결과가 아닌 흐름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행복’이란 주제를 받아들었을 땐, 쓸 말이 참 많았다.
나는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고, 유방암도 웃으며 견뎠고, 지금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중년의 삶을 나름 즐기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무난하고, 사람들과도 큰 갈등 없이 지낸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감정에 솔직해지라’는 말이 더해지자, 펜이 멈췄다.
나는 정말 진짜 행복한 걸까?
여백이 두려운 사람
무탈하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내 마음은 늘 번잡하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할 일이 없으면 마음이 헛헛하고 불안해진다. 빈 다이어리를 보면 죄책감이 올라온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운다.
"오늘의 할 일: 영어 공부 1시간, 디지털 그림 그리기, 인스타툰 올리기, 블로그 정리, 책 읽고 정리하기…"
하루라도 일정이 빼곡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여백증후군’이라고 했다.
일정이 적혀 있지 않은 빈칸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바람을 견딜 수 없는 사람. 정작 어느 일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옮겨 다니며 '이러고 있으면 안 돼'라는 생각에 시달리는 사람.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정 없는 결과는 허무했다
나는 항상 과정보다는 결과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왔다.
"과정을 즐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라는 말은 책에서도, 글에서도 자주 접했지만, 공감하기 어려웠다.
결과가 나쁘면 모든 게 허무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단지 나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능력과 효율로 평가받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불안 속에서 자라왔다.
결국 ‘성과 = 행복’이라는 등식을 믿게 된 것이다.
멈추자, 살아 있는 것이 보였다
며칠 전, 텃밭에 다녀왔다.
작년에 심은 양파와 마늘을 수확했는데, 무성한 잎과는 달리 열매는 탁구공보다 작았다.
순간 실망스러웠다. 애쓴 만큼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 뽑아낸 뒤의 텅 빈 땅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 땅에서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개미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미생물을 가득 품은 흙은 마치 살아 숨 쉬듯 들썩거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양파와 마늘은 그저 결과물일 뿐, 그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이야말로 진짜 생명이고 행복이었다.
흙 속 미생물들이 식물을 키우고, 바람과 비, 벌레들의 흔적과 시간이 양파와 마늘을 만들었다.
그 시간을 내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정이 없었다면 그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목적 없는 시간의 기쁨
요즘은 ‘노는 시간’의 즐거움을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목적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는 경험.
얼마 전부터 수채화로 남편 얼굴을 그리고 있다. 같은 사진인데도, 볼 때마다 다른 표정이 보인다.
오늘은 눈썹이 더 올라가 보이고, 내일은 입꼬리가 더 부드럽다.
색을 고르고 붓을 적시며 느릿하게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들, 나는 놀랍도록 편안하다.
행복은 찰나주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단순히 현재의 쾌락만 추구하는 의미로 오해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을 즐기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억지로 즐거운 척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기다림도 괜찮고, 멈춤도 괜찮다.
목적에서 벗어난 시간, 여백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고 조용한 감정들...
그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오늘은 나도 조금 더 느리게, 나만의 속도로 살아보려 한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땅 위로 스며드는 빗물처럼.
결과가 아닌 흐름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