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도시농업 드로잉 프로그램 첫 수업 참여기
“도시농업과 드로잉이라고?”
지인이 보내준 안내문을 보는 순간, 눈길이 멈췄다. 농업과 미술의 만남이라니.
어떤 조합일까.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을 앞에 두고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기분이었다.
호기심에 곧장 신청 버튼을 눌렀고, 드디어 오늘 첫 수업에 다녀왔다.
흙을 밟으며 시작된 도시농업
고매동 시민농장 교육장에 모인 수강생은 서른 명 남짓. 각자 짧게 자기소개를 나눈 뒤, 우리는 곧장 텃밭으로 향했다. 잡초를 뽑고, 감자와 상추, 무씨를 심고, 두둑을 만들며 함께 흙을 만졌다.
뜨거운 햇볕과 습기 때문에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졌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온 건 “아이고, 허리야”라는 푸념과 동시에 웃음소리였다. 흙을 밟고 땀을 흘리며 시작하는 도시농업은 힘듦보다 설렘을 먼저 안겨주었다.
내 손으로 만든 작은 책
농사일을 마친 뒤에는 교육장에서 ‘텃밭일지’를 만들었다. 종이를 접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바느질하듯 꿰매어 작은 책을 완성했다.
손은 금세 꼬질꼬질해졌지만, 실과 바늘이 지나가며 책이 되어가는 순간 묘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앞으로 이 안에 우리의 이야기가 적히겠구나.”
어린 시절 이후 잊고 지냈던 미술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마음이 말랑해지고, 내가 직접 만든 일지가 눈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벅찼다.
같은 조에 있던 한 참가자는 일지 표지에 제목을 쓰며 말했다.
“너무 재밌는 거 같아요. 종이에 바느질하니까 책이 되네요.”
그리고는 다음 주엔 간식을 가져오겠다며 웃었다. 작은 활동이지만 모두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는 듯했다.
노동의 소외에서 충족감으로
나는 전산을 전공해 오랫동안 웹사이트 제작과 기업 외주 유지보수를 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늘 ‘부품’처럼 쓰인다는 소외감을 지울 수 없었다. 창조적 활동보다는 시간에 쫓겨 복사와 붙여 넣기를 반복했고, 결과물은 결국 ‘월급’으로만 환산됐다. 일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소외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늘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면서는 달랐다. 농사는 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심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과정이 충만하면 결과도 충만하다. 그 결과는 남의 것이 아닌, 내 삶과 곧바로 연결된다.
미술을 곁들여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나를 더 자유롭게 했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창의성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힐링, 그리고 새로운 출발
최근 IT와 농업을 접목한 스마트팜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느낀 충만함은 속도와 효율성보다는 ‘창작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창조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텃밭과 드로잉은 단순히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창조의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노동은 더 이상 소외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
앞으로 아홉 번의 수업이 남아 있다. 그 속에서 또 어떤 충만한 경험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도시농업 #드로잉수업 #노동의소외 #충족감 #힐링라이프 #중년의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