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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

다양한 가족을 품지 못하는 사회,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

by 봉순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족은 꼭 피를 나눠야 할까


20년 넘게 각자 자취를 해온 두 여성이 마흔이 넘어 아파트를 구해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다. 저자 김하나는 광고인 겸 작가, 황선우는 잡지 기자. 두 사람은 각자 고양이 2마리씩을 키우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여자 둘 + 고양이 넷’이라는 w2c4의 조립식 가족을 꾸리게 된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표지 ⓒ 이야기장수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고, 최근에는 영국 펭귄랜덤하우스와 미국 하퍼콜린스에 판권이 수출되어 내년 해외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비혼 여성의 동거’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싸우는 일."


함께 살며 부딪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성숙하게 우정을 쌓아가는 두 여성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강하게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비혼 여성의 동거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 제도권 밖에서 삶을 개척하는 용기에 나는 물개박수를 보냈다.



결혼과 출산, 여전히 강요되는 틀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외로울 것"이라는 동정과 "언제 결혼하느냐"는 재촉 속에 놓인다. 나 역시 이런 시선을 피해가지 못했다. 38살에 늦은 결혼을 했을 때조차 "아이를 빨리 낳아야지"라는 말이 쏟아졌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고, 결국 병으로 포기했을 때 큰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감도 있었다. 더 이상 시험관 시술을 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의 재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제도권의 따뜻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부모님은 안도하셨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또 다른 편견이 있었다. 아이가 없는 부부라는 이유로 다시 ‘결핍된 존재’라는 낙인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이기적’이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출산·육아·자녀 교육을 중심으로 단단히 묶여 있기에,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이 새로운 관계망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제도권 안에 들어왔음에도,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차갑고 고립된 자리에 남아 있었다.


제도 밖에 놓인 가족들


이런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단순한 동거담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느꼈다. "가족은 꼭 피를 나눠야 하나?"라는 질문 말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친족 가구는 2010년 20만 가구에서 2023년 54만 가구로 급증했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 친구, 동료와 함께 사는 것이 흔해졌지만, 병원 보호자 서명이나 임대주택 청약, 사회보험 피부양자 등록, 상속 등에서 여전히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생활동반자법은 성인 두 사람이 합의해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혼인에 준하는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 기존 가족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취지다.


용혜인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으나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되었고, 올해 9월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이제는 국회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활동반자법, 이제는 필요한 이유


반대하는 쪽은 생활동반자법이 헌법상 가족 제도를 흔들고, 결과적으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도 남용과 국가 재정 부담도 반대 논리다. 그러나 이미 초고령화, 1인 가구 급증, 돌봄 공백이라는 현실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가족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결혼과 출산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보여주듯, 가족은 피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ai-generated-8936264_1280.jpg ▲가족의 자리는 꼭 혼인·혈연으로만 채워져야 할까 ⓒ 픽사베이관련사진보기



엄마와의 대화, 그리고 바람


얼마 전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딸아, 고맙다. 그런데 너는 아이가 없어 늙어서 누가 널 돌봐주겠니. 그게 늘 안타깝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왜 없어. 대한민국 있잖아."


그 순간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하고, 다양한 모습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틀 안에서만 온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비혼이든 동성이든 어떤 형태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계라면 모두 존중받으며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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