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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한 사랑, 시골통닭

서울 각시의 입맛을 바꾼 첫 집밥 이야기

by 봉순이



처음 결혼 전, 인사드리러 시댁에 내려갔다. 전남 보성, 그중에서도 노동면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의정 씨, 우리 동네는 전빵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서울 각시는 깜짝 놀랄 수도 있어요.”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미리 겁을 주었다. 나는 웃으며 “시골이라 그렇죠, 뭐”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설마 아무것도 없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정말로 작은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들판은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너르게 펼쳐져 있었고, 논두렁 사이사이로는 허리 굽은 어르신들만이 보였다. 바람은 한없이 고요했고, 낯선 흙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서울에서만 자라온 나로서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곳에서, 나는 인생의 손꼽히는 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가만히 앉아 있어라” 하셨다. 그런데 밖에서 “푸드득, 꼬끼오” 닭 우는 소리와 함께, 뭔가 분주한 기척이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마당으로 나가보니, 부엌 옆에는 커다란 솥단지가 걸려 있고 닭장이 있었다. 남편은 저쪽에서 칼을 쓱쓱 갈고 있었고, 어머니는 솥에 물을 끓이고 계셨다.

앗, 이게 무슨 장면일까. 잠시 후 남편은 칼을 들고 용감하게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푸드득’ 날갯짓과 ‘꼬끼오’ 외마디 소리가 뒤섞여 전쟁터 같았다. 그리고 이내, 축 늘어진 닭 두 마리를 양손에 들고 나왔다. 나는 그만 까무러칠 듯 놀라고 말았다.


“정말 닭을 잡은 거야?”

어머니는 닭을 뜨거운 물에 데친 뒤 꺼내서 능숙하게 털을 뽑기 시작하셨다. 커다란 대야 위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하얀 증기 속에서 솜털이 술술 빠져나갔다. 나는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에 어쩔 줄 몰랐지만, 이내 호기심이 앞서 닭털 뽑는 일을 도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쓱쓱 뽑히는 닭털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 정도 손질을 마치자, 시장에서 보던 닭의 모습이 되었다. 어머니는 내장까지 깨끗이 정리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닭똥집을 잘라 소금과 기름장에 찍어 맛보라 하셨는데, 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번졌다.

서울에서만 자라온 나는 입맛도 그저 ‘초딩 입맛’이었다. 늘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바다에서 갓 올라온 해물이나 밭에서 막 딴 채소의 참맛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보성 시댁에서 맛본 음식들은 달랐다. 벌교에서 바로 온 꼬막은 쫄깃하고 바다 향이 가득했고, 밭에서 막 따낸 상추와 고추는 아삭하고 달았다. 세상에, 음식이 이렇게 ‘살아있는 맛’을 낼 수 있다니!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맛에 눈을 떴다.

그리고 드디어, 갓 손질한 닭은 기름에 들어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바삭하게 튀겨졌다. 기름방울이 튀며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마당 가득 번졌다. 시골식 통닭이었다.

세상에, 그 맛이란! 내가 알고 있던 후라이드 치킨과는 전혀 달랐다. 더 고소하고, 더 바삭하고, 입안 가득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퍼졌다. 껍질은 얇으면서도 바삭하게 부서졌고, 속살은 촉촉하면서도 쫄깃했다.


양념이나 튀김옷의 맛에 가려졌던 도시 치킨과 달리, 이 통닭은 재료 자체의 깊은 맛이 살아 있었다. 뼈 사이에 붙은 살까지 발라 먹으며, “닭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하는 놀라움이 밀려왔다. 나는 감탄에 감탄을 하며 한 마리를 거의 혼자 다 먹어버렸다. 시어머니는 놀라면서도 웃으셨다.

그 웃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시어머니께서 요양원에 계셔 자주 뵙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의 맛과 정성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봄이면 직접 뜯어 무쳐주신 씀바귀와 달래, 여름의 옥수수와 감자, 가을이면 보내주신 고춧가루와 된장, 겨울이면 쌀가마니를 내주시며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던 말씀까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 주세요.

저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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