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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친구가 된 겨울

추위를 견디며 내 안의 줄기를 키우는 일

by 봉순이



이맘때 텃밭의 공기는 매섭다.
여름 내 무성하던 풀들은 말라가고, 생명력 넘치던 흙도 차가운 바람에 건조해진다.


실처럼 가느다란 양파 모종 200개를 샀다.

그 연약한 모종이 몇 달 지나 통통한 알이 된다니, 계절을 겪을 때마다 새삼 신기하다.


사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뿌리가 아니다. 잎이 변해 겹겹이 포개진 줄기다. 까도 까도 끝없이 속이 나오는 건 알이 아니라, 잎의 밑동을 하나씩 벗기는 것이다.


양파는 조금 특별한 작물이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다음 해 초여름쯤 수확한다.

추위를 통과해야 꽃을 피우는 ‘월동작물’로 마늘, 보리, 밀, 쪽파, 달래, 무 등이 그와 닮았다.


가을에 자리를 잡은 양파는 잔뿌리를 내리며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한겨울 기온이 뚝 떨어지면, 세포 속 당분 농도를 높여 스스로 얼지 않도록 몸을 보호한다.

흙은 겨울 담요가 되고, 눈이 덮이면 보온 효과를 얻는다.


그렇게 시린 계절을 버티고 나면, 봄 햇살을 받아 그동안 저장해둔 힘을 폭발하듯 쏟아낸다.

잎의 밑동이 서로 겹쳐지며 둥글게, 더 둥글게 단단한 양파가 된다.


나는 텃밭에 앉아 그 가느다란 모종들을 한참 바라봤다.

추운 겨울의 인고를 견디면, 저 작은 실 같은 줄기들도 주먹만 한 결실로 자라날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이번 겨울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겠다는 마음이 든다.

눈 속에서 뿌리를 키우는 그들처럼, 나도 내 안의 줄기를 길러낼 것이다.

혹독한 현실을 담요처럼 덮고, 시련을 이불 삼아 봄을 준비하리라.
지금은 가늘고 약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내 안에도 단단한 결실이 자라날 것이다.


춥다고 울지 않으리.
이번 겨울,

나는 양파와 친구가 되었다.



이번 겨울, 나도 양파처럼 ©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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