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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살리에르가 깨어날 때

칭찬 대신 튀어나온 네 글자 – “시를 써봐.”

by 봉순이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다.

불편한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그 감정을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재미이자, 치유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눈치도 많고, 누가 뭐 했다고 하면 금세 마음이 쏠린다.

그래서일까 천재들을 보면 감탄하고, 동경하기도 하면서 그 매력에 빠져든다.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한동안 자주 봤는데, 살다 보니 뜸해졌던 친구였다.


내가 요즘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쓴다고 말하자

그 친구는 휴대폰을 꺼내 5년 전쯤 심심해서 끄적였다는 시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심심해서 끄적였다’는 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시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나 싶었다.

비유도 이해가 됐고, 문장은 짧지만 꽉 차 있었다.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 같기도 하고,

씹을수록 신선한 맛이 나는 과일 같기도 했다.


그 친구는 또 다른 시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나와는 다른 감수성과, 그 감정을 표현하는 생생한 묘사가 담겨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 방식이었다.

그 친구는 심심해서 끄적였다는데, 나는 수없이 고민하고 고치고 또 고친다.


나는 친구에게 먼저 응원을 해주기보다 이렇게 물었다.


“왜 시를 썼어?”

친구는 시크하게 말했다.


“시가 짧잖아. 길면 못 써, 바빠서.”

나는 그 순간,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가 되었다.


“신은 왜 내가 아닌 그에게 재능을 주셨나요!”

살리에르의 울분은 나의 울분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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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내 글을 읽고 한마디 했다.


“글이 좀 점프하는 느낌이야. 명확하지가 않고…”


다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면,

“아 그래? 어느 부분이 그래? 같이 수정해보자.”

하며 편하게 말했을 텐데,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어디가? 어떤 의미에서?”


나는 톡쏘는 말투로 친구의 문제제기를 무마시켰지만,

마음속에 밀려오는 자괴감은 어쩔수 없었다.


“아,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인간인가…”


오늘도 이렇게 넋두리처럼 글을 쓴다.

하지만 내 마음 한 켠은 여전히 쓰리다.

만약 그 친구가 나라면,

그 재능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면서,

비록 이름은 못 날려도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나갔을 것이다.


그 친구는 그 후로 글을 하나도 안 쓴다.

요즘은 아이돌 따라다니고, 다꾸만 한다.


아… 신이시여.

왜 이런 재능을 저에게는 안 주셨습니까!!

나의 몹쓸 질투심은 어김없이 끓어올랐고,

그 친구와 헤어질 때,

나는 목구멍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를… 써봐.”

고작 이 네 글자.


나는 속으로 외쳤다.

너의 그 섬세함을, 너의 감정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넌 예술가라고,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칭찬을 폭풍처럼 퍼붓고 싶었건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돌아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심하게 속삭였다.

"친구야, 나의 뮤즈가 되어줘"


나는 오늘도,

너를 생각하며 시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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