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색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에게, 이 물음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질문 앞의 “요즘”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색도 나처럼 시절과 상황에 따라 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때그때 나를 감싸던 색을 하나씩 꺼내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무지개였다.
하루가 모자랄 만큼 뛰어다녔고, 책을 좋아했던 나는 문학소녀를 꿈꾸기도 했다.
감수성 풍부하고 생기 넘쳤던 그 시절,
나를 감싸던 색은 분명 알록달록한 무지개였다.
20대 중반, 나의 세상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옷장은 검은 옷들로만 가득했고,
상하의, 양말, 속옷까지 모든 것이 검정이었다.
왜 그렇게 검정에 매달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가족 갈등과 연애 실패, 보이지 않는 미래와 두려움이
내 안에 눈덩이처럼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검정은 나에게 보호막이었다.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세상과 나 사이에 안전한 벽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검은색은 나의 20대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30대 중반, 나의 인생에 빨간색이 들어왔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던 서른일곱,
처음으로 빨간 머리띠를 하고 치마를 입고 나간 날,
남편은 나를 보며 “정말 예쁘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포기했던 청춘의 끝자락에서 다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빨간색은 나에게 활력이자 설렘, 존재의 확인이었다.
사랑이 사람을 검은색에서 빨간색으로 점프시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금,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록이다.
초록은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는 위로의 색이다.
초록을 좋아하게 된 건 집 근처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수확이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순 하나, 잎맥 하나가 주는 생명감에 마음이 움직였다.
연초록, 진초록, 회초록, 민트초록, 올리브초록...
이름도 붙일 수 없이 다양한 초록들이 내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그 초록은 나의 청춘을 보조해주는 색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품어주는 따뜻한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단풍이 되어 잎을 떨구는 날도 올것이다.
연이 다하면 자연으로 편안히 돌아가는 바램도 가져본다.
색은 변한다.
내가 좋아하는 색도, 나의 마음도, 삶의 계절도.
그리고 ‘변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참 좋다.
앞으로 또 어떤 색이 나를 찾아올까?
어떤 색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해도,
나는 활짝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안아줄 것이다.
내가 사랑한 색은 결국 나의 인생이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색들과 하나 되어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