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흔적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질문을 던진 상대방과는 다르게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짧지도 길지도 않은 27년 인생사를 되돌아보았다.
그 순간 일차원적으로 떠오르는 가족과 친구의 존재보다
듬직한 푸른 바다가 우선적으로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계곡물에서 험하게 놀다가 크게 다칠 뻔한 적이 있어서 극도로 물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일 년에 적어도 서 너번 정도는 바다를 보러 무심코 떠나곤 한다.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은 매 순간이 아름답지는 않다.
회색빛의 먹구름이 감도는 하늘 아래의 바다, 언제 그칠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억세게 내리는
장대비 아래의 바다를 바라 본 순간이 더 많다.
바로 이 순간 바다는 나에게 있어서, 아니 우리 모두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듬직한 수호자가 되어준다고 느꼈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다를 찾아가면 규칙적으로 넘실대는 파돗소리에 울적함이 씻겨지고
마치 나를 거대한 자연의 울림으로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다함께 바다를 향해 뛰어갈 때 치는 파도는
함께 공감해주고 반겨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푸르른 바다를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는 파 묻힐 것 처럼 내 발목을 감싸오는
모래 사장을 힘겹게 헤쳐가야 만날 수가 있다.
이토록 당도하기 어려운 바다이지만 언제나 그 곳에서 항상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특별하기도 하며 고귀한 것이 바로 바다이다.
그렇기에 내가 바다를 가자고 제안을 하는 경우는
이 편안하고 마음이 치유되는 좋은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바다를 보러 종종 떠나게 된다.
흩어져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드 넓은 바다의 끝에 서서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행복의 밀도는 더욱 조여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하루의 3분의 1을 끊임없이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부여 잡은 채 바삐 살아간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촘촘히 분 단위로 할애해서 사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고
이따금씩 해변으로 떠나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가?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그 여정을 떠난다면 내 앞에 조우한 바다도 언제나 변치 않는 내 편이고
뒤에서 나를 바라봐줄 동반자 또한 나의 편이니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