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록
졸업도 채 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라고 부르기도 이른 나이인 22살 때 미주로 향하는
9시간 가량의 여정에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올라탔었다.
해외여행이라곤 쥐꼬리만한 아르바이트 월급을 몇 달을 모아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2박 3일로 떠나봤던 게 전부인 나에게 있어서 9시간, 심지어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난다는 사실은 실로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였다.
긴 시간 끝에 도착한 캐나다 벤쿠버 국제공항은 내가 생각했던 깔끔한 스타일이 아닌
마치 아프리카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원주민 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져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지금은 사라진 CO-WORK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 이민국 심사 사무실로 우리는 함께 이동했고
꽤 기나긴 시간 끝에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어린 패기였는지 무슨 자신감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영어권 나라에
도착한 나에게 그들은 이 곳에 왜 왔는지 부터 얼마나 체류할 예정인지 등등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계속 늘어나며 나의 마음을 옥죄어왔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아침마다 영어듣기평가를 훈련했어서 그런지
다행히도 리스닝은 나쁘지가 않아서 무사통과를 하고 붉은색 갱지의 서류 두 장을 건네어받았다.
동양에서 넘어온 내가 이 낯선 땅에서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없어서는 안되는
신분증이 되어줄 소중한 비자를 혹여나 잃어버릴까 미리 준비해온 대학교 클리어화일에 고이 꽂아두었다.
그렇게 2014년 1월부터 10월까지 나는 캐나다 벤쿠버에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이라서 모든 게 서툴었고 그로 인해 또한 설렘이 증폭되었다.
캐나다에만 있는 카페와 맛집을 우후죽순으로 찾아다니고
캐나다 국기가 크게 찍힌 엽서를 다량 구매해서 손에 불이 나도록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지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밤새도록 글자를 써내려갔었다.
초반에는 그렇게 한국과 나와의 인연의 끈을 쉽사리 놓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트릿 네이밍을 외우고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태초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th 발음을 3시간동안 공부하면서 차츰 낯선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머물렀던 캐나다의 서부 도시인 벤쿠버는 자연이 잘 어울러진 곳이여서 도심 속에서도
푸르른 잔디와 유유자적 흘러가는 강을 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면 다운타운 메인 스트릿을 하염없이 걸어서 잉글리쉬 베이 해안가에 가면 그만이였다.
떠나오기 전에는 카페와 브런치 집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지 다짐했으나
떠나와보니 이 곳만의 매력인 자연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시작한 게 어쩌면 이 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5년이 흐른 지금에도 변함없이 그 당시의 10개월간의 경험과 감정들이 새록 새록 기억이 날 만큼
벤쿠버에서의 삶은 내가 성장해감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몇 년이 지나도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우리들의 삶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균형있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