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록
나는 우선 여행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처음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을 탔을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였다.
이륙할 때의 간질거리는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구름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했었고 어른이 되면 비행기를 매일매일 타고 싶다고 소망했었다. 20살 때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 오사카를 갔었으니 소망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낯선 곳을 다니다보면 발걸음은 더욱 느릿해지고 주변을 관찰하고 사색에 잠기는 일이 생기는 것도 좋고, 한국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던 내 말을 주의깊게 듣는 사람이 없어서 자유로운 느낌도 좋다.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만나서 풋풋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나는 책 읽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부터 그런 이상향에 맞춰지고 싶어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사람들의 시끌벅쩍한 대화와 통화소리, 잡상인들의 물건 파는 소리 등 솔직히 대중교통이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그 소음들을 뚫고 고도의 집중을 발휘해서 활자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소수의 만남을 좋아한다. 무리지어 다니면 뭔가 멋있어보이고 내가 더 강해보여서 좋았던건 아주 어렸을 때 뿐이고 지금의 나는 단둘이 보는 조촐한 만남을 좋아한다. 온전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빠른 피드백이 오가는 상호보완적인 일대일의 대화를 좋아한다. 다수의 만남에서는 분위기를 이어나가고자 대화를 주도하는 성향이 있는데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소수의 만남에서는 상대방의 대화를 주로 들어주려고 하다보니 정작 나의 이야기는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배움을 얻어가니 좋을 따름이다.
나는 하루에 2만원씩 지출할 수 있는 삶을 좋아한다. 크고 넓직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책을 읽으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나만의 사색이 끝난 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간단한 밥 한끼를 할 수 있는 생활을 좋아한다. 24살이라는 나이에는 아직은 풍요롭진 않지만 애틋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단지 디자인을 전공으로 공부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통해 감성을 치유받을 수 있기에 좋아한다. 그림이나 공연 등을 볼 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질녘까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회를 보고 난 후 근처 카페에 가서 팜플렛과 티켓을 다시 바라보며 각자의 느낀 바를 공유하거나 공연을 보고 나와서 서로가 감명받은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함께 검색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