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 진 맑을 아 Apr 22. 2019

기고되지 못한 글

순간의 기록

“나는 어영부영 가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있다.”

 

휴가를 행복하게 보냈는지는 숙소를 떠나면서 느끼는 기분으로 알 수 있다. 치앙마이 반캉왓 마을에서 일주일 같던 이틀을 보냈던 작년 여름의 기억은 나의 기억의 자료창고에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어학연수를 통해 알게 된 태국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어서 떠나게 됐던 8일간의 태국 여행 중 2일을 치앙마이에서 보내기로 결심을 한 계기는 우연히 본 여행 블로거의 반캉왓 마을 사진 때문이였다.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그 공간이 주는 아늑함을 좋아하는지라 옹기종기 나무로 된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을의 사진에 나는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방콕에서 출발하는 심야기차를 타면 아침에 치앙마이에 도착할 수 있다. 기차를 타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편안하게 누워서 갈 수 있는 좌석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직원이 투명한 티켓창구 유리벽 너머로 전해준 말은 매진이였다. 할 수 없이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있고 좌석도 일반 의자인 3등석 티켓을 구매했다. 30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기차 역 내부에 있는 샤워실에 가서 씻으려고 했으나 이미 영업종료가 되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또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기에 두 손을 싹싹 빌어 5분만에 샤워를 끝내겠다고 하고 후다닥 마친 후 기차에 탑승했다. 으스스한 밤길을 기차는 맹렬히 달렸지만, 기차칸의 창문이 열려있어서 온갖 벌레들이 기차 안에 출몰한다는 사실을 나는 조느라 알지 못했다. 


아침이 되니 기차 차창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빼곡히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13시간의 여정 끝에 치앙마이 역에 도착을 했다미리 기차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분께 썽태우 픽업을 예약해두어서 숙소까지 편하게 갔다고즈넉한 2층에 위치해있던 우리의 방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늦은 첫끼로 마을 안에 있는 노천레스토랑에서 과일에이드랑 수제버거를 먹었다주인 언니는 통통했으나 톡톡 터지는 귀여움이 더 눈에 들어왔다영어를 구사할 줄 몰라서 우리랑 의사소통이 힘들어보였던 그녀는 계산을 할 때 종이에 직접 사칙연산을 적어 내려가며 계산을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였다배가 차니 드디어 주위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마을 내부에 있는 소품샵들을 차근히 구경하고 마을을 벗어나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는데 우연히 아트센터를 발견했다조심스레 들어가보니 바쁘게 전시를 준비 중이였고 총책임자로 보이는 어엿한 사내가 내일 저녁에 오프닝이 있으니 놀러오라고 초청을 해주었다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다시 반캉왓으로 돌아와 내부 북카페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반캉왓 마을의 대부분 상점들은 이른 시간인 6 30분에 마감이였다. 24시간 편의점은 물론이며 카페가 코 닿을데면 널려있는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고 각자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듯 해서 나는 경외스러웠다북카페에서 태국어로 쓰여있어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알록달록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일러스트 책 한권과 함께 그린티라떼를 마시며 친구랑 쉬고 있는데 문득 다음날의 일정인 님만해민에 어떻게 가야될지가 막막해졌다영어를 꽤 하던 주인 청년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내일 자신이 휴무이니까 직접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받았다예상치 못했던 호의여서 더욱 고마웠다감동으로 가득찼던 반캉왓 마을에서 첫날밤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원샷하고 곤히 잠들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집에서의 다음날 아침은 새소리를 들으며 여느 때와 다르게 상쾌하게 맞이했다기대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조식도 훌륭했다예쁜 그릇에 각종 과일과 주스그리고 시리얼이 바구니에 담겨져서 아담한 소년이 숙소 앞까지 가져다주었다어제 북카페 주인 청년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와 시간은 카페 앞 오전 11시였다정말 나올까 긴가민가 하면서 친구랑 나갔더니 기다렸다는듯이 자신의 차로 우리를 안내했다고마움을 표시하고 차에 올라탄 후 만난지 하루가 지나서야 서로의 통성명을 했다청년의 이름은 낫(Not)이였다방콕에 계속 살다가 이곳에 머무른 지는 1년밖에 안되었다고 했다영어를 꽤 하는 이유는 방콕에 있을 때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묻지 않은 의구심을 해결해주었다오순도순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청년 덕분에 무사히 님만해민에 도착했다그가 베푼 친절함 덕분에 님만해민과 타패게이트리버사이드 등 치앙마이의 곳곳을 무사히 여행한 우리는 감사함을 보답하기 위해 와로롯 시장에서 선물로 케익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가서 한창 마감 준비 중인 낫에게 주었더니 너무 기뻐해서 우리가 오히려 더 고마웠다물론 어제 초대받았던 전시 오프닝에도 까먹지 않고 참석해서 공연과 전시를 즐겼다다음날 반캉왓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낫과 작별인사를 하려 했으나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고 해서 아쉽게도 완벽한 마무리는 못 지었다.



매순간이 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따뜻했고 조용하지만 좋았던 치앙마이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보는 감회에는 늘 그때의 행복감이 따라붙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사랑하는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