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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09.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10

강릉에서 열 번째 날


부모가 된다는 것




강원도의 일상이 특별한 것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 빌딩 숲이 가리지 않는 넓은 하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자연이라는 실체를 강원도에 살면 언제든 느껴볼 수 있다.

오늘은 강릉 사천면에 위치한 '대관령아기동물농장'에 가는 날이다.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구불구불 산길과 시골길을 지나 동물농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생소한 알파카가 우리를 반겼다.

딸아이가 직접 본 동물은 강아지 고양이 정도이고 그마저도 손으로 만져본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커다란 동물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모양이다.

멀지 감지 서서 바라보다가 내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고 살며시 다가온다.



1관부터 5관으로 구성된 시설은 병아리, 오리, 토끼부터 시작해서 알파카, 소, 염소, 말까지 다양한 동물종을 보고, 만져보고, 먹이를 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오리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무서워하던 딸아이가 시간이 지나며 토끼 사이에서 즐겁게 뛰어다니고,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새삼 내가 부모라는 사실이 실감 난다.



나는 어떻게 부모가 되었을까.


31년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터라 아이가 태어난 직후 내가 아직 부모가 아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새벽마다 깨서 우는 100일도 안된 아이에게 화가 났고, 제발 좀 울음을 그치고 자라고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런 내 모습에 후회를 하면서도 반복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아내와 오붓하게 외식하고 심야 영화 한편 보던 시간,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며 웃고 떠들던 시간들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1년을 보냈을 때는 종종 벽 없는 감옥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런 내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세게 안아도 다칠까 걱정이 될 정도로 약해 보이던 아기가 목을 가누고, 기어 다니고, 걷게 되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악쓰고 떼쓰는 모습에 속에서 천 불이 끓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아프거나 넘어져 까지기라도 해서 우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아프다.




나는 그렇게 내 딸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천천히 부모가 되었다.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내 딸아이가 내가 사 온 딸기에 기뻐할 때면 딸기 농장이라도 사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행복하다.


하루하루 너무 빨리 커버려서 오늘 눈에 담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지금 딸아이의 모습이 그리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여전히 딸아이가 떼쓰면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지만, 내 품에 꼭 안겨있는 이 아이를 위해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이겨내는 강한 아빠가 되겠다는 결연함이 생긴다.



부모가 된다는 것.

나에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멈췄던 성장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경험해 본 적 없었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다.


토끼에게 먹이를 주던 딸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오늘도 아빠 노릇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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