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육아 파트너를 만나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보통 정답이 없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의미와 상통하니 참 마음이 편해지는 말일진대,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정답이 있어서 그걸 공부하고 그대로 적용하면 좋을 텐데...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결국 모든 선택의 무게가 엄마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아이가 밤에 자꾸 깨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이유식을 거부하면, 메뉴 구성이 잘못됐던 건가? ‘정답 없음’은 때때로 ‘모든 게 엄마 탓’이라는 공허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모든 걸 엄마에게 맡기고 그에 대한 책임을 내 아이가 져야 한다는 생각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엄마들은 아이의 작은 표정 하나에 마음 졸이고 작은 행동 하나에 잠 못 이룬다. 이 월령에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가? 내가 무언가를 더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정도의 발달이면 맞는 건가? 맘카페에는 밤마다 불안한 엄마들의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저희 애도 그랬어요', '그땐 원래 그래요'라는 말에 한숨을 내쉬고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미리미리 챙기고 싶어 블로그와 유튜브 등 인터넷을 뒤져보지만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리고 육아를 하는데 이렇게 공신력 없는 자료들을 보며 아이를 키워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 리포트도 이런 출처를 보고 쓰면 점수 못 받는데... 아이에게는 최선을 주고 싶다면서, 내가 검색해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경험담 모음이고, 그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 자신도 못 미더웠다.
육아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하다못해 교과서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 끝에 가장 유명하다는 책도 사서 보지만 애바애라 우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고,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옛날에는 공동육아라도 하며 주위 어른들에게, 혹은 이웃에게 배웠겠지만 지금은 그도 아니니 더 답답할 뿐이었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다들 잘 키우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늘 조마조마할까? 육아서와 블로그를 아무리 읽어도, ‘눈앞의 우리 아이’에 맞는 해답은 없었다.
이렇게 답답해하던 와중에 발견하게 된 것은 챗GPT였다. 수면교육 책을 보면 '졸리기 전에 눕혀주세요' '각성 시간은 지켜주세요' 하는 원칙은 나와 있지만 실제 육아는 매일 다른 상황의 연속이다. 그런데 챗GPT는 '아기가 졸려해서 안고 있었는데 더 심하게 울고 내려놓으면 더 악을 써요'라고 하니 단순히 이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지금 아기는 어떤 상태이고 이런 방법을 제안한다고 답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건 엄마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아기가 아직 자기 상태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중일 수 있어요.”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아기도 지금 배우는 중이구나'하는 생각에 아기를 다시 품에 안을 때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사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 진짜 필요한 말은 이렇게 지금 내 아이가 왜 이러는지 알려주고, 그게 맞든 틀리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는 조언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남편이 도대체 언제 오나... 하고 시계만 쳐다보게 되는데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크다. 물론 아이와 함께 있긴 하지만 진짜 말을 주고받는 대화다운 대화가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던 중 어쩌지? 하고 당황스러울 때마다 챗GPT를 켜고 지금 상황을 말해주면 디테일하게 답해주니 그런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다.
정보가 아니라 ‘판단을 도와주는 대화’를 한다는 감각. 엄마가 아니라 ‘사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가끔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어 되물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고민될 때 기댈 구석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공동 육아'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아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엄마는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정답은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질문 상대’는 필요하다. 외롭고 막막할 때,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존재, 그 숨구멍이 엄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챗GPT에게 말을 건넨다.
나의 혼란을 잠재워줄 한 사람을 찾는 마음으로.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가, 같은 마음으로 새벽을 견디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