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라, 낳을 수 없는 사회
“둘째는 내가 아이를 볼 수 있게 되면, 그때 낳자”
남편의 이 말은 우리 부부의 고민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남성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모두 정책적으로 비껴서 있었고 우리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출산율은 소득과 반비례한다.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에 비해 선진국에서는 인구 소멸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출산율과 소득이 비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4~5 분위의 상위 계층은 하위 1~3위 계층보다 평균 자녀 수가 많았고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출산율 감소 폭도 하위층(51%) 대비 상위층(24.2%)은 절반 수준이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여건이 있을수록 아이를 더 낳는 경향이 뚜렷한 것이다. 이처럼 둘째, 셋째 아이를 낳는 비율이 소득과 함께 상승한다는 점은 정부가 금전적 지원 정책에 집중하는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인식은 통계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오찬호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또한 출산율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변수로만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맞벌이 부부가 늘었지만 육아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쏠려있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아,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출산 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조직에서의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출산율에 관한 국가 정책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닌) 찾아서 신청해야 하는 금전적인 부분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보니 이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정책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해 왔다. 첫째, 청년들이 돈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둘째,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더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하나만 낳는다. 첫 번째 방향에서의 문제는 흔히 말하는 N포세대와 연관되어 있다. SNS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저 정도의 재력이 있어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혼자 살고 말란다. 하고 생각하는 현상.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스드메 등 결혼에 돈을 많이 투자하는 문화와 부동산 가격만 잡히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문화는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부동산 가격도 잡히면 이미 빚을 끼고 산 사람들의 도산이 우려되기에 쉽게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두 번째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첫째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혼자는 외로우니 둘째를 가질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는데,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조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다. 보통 사교육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아이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학원을 찾는 부모들이 많다. 물론 의대를 보내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고, 5세 고시를 보게 하는 열정적인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회사에 있는 시간에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학원을 보낸다. 교육보다는 내가 집에 올 때까지 아이를 맡겨둘 곳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태권도 학원에 꼭 여자 선생님을 뽑는 이유와 같다. 아이를 다음 학원에 보낼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사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돌봄의 대체물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7시에 퇴근하는 엄마는 태권도 다음 미술, 미술 다음은 영어 등으로 시간을 이어 붙인다. 그래서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몇 개인지가 곧 부모의 퇴근 시간이다. 그 아이들이 하나가 아닌 둘, 셋이 되면 어떨까. 단순히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체력과 시간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많은 맞벌이 가정에서는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황혼육아 비율은 2021년 기준 63.8%이고 환갑·칠순의 조부모들은 노후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더 이상 손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까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조부모 육아수당이라는 것도 도입했지만 이는 월 30만 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해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제대로 된 육아 지원은 ‘부모가 빨리 집에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들은 쉽고 빠른 길을 너무 어렵게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아이를 키울 때 초반 1~2년보다는 그 이후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둘째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몇 백만 원 수준의 일회성 지원금이 아니라 퇴근 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부모가 퇴근 후에도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는 여유. 그 단순한 해답을 외면한 채 숫자만 올리려는 정책으로는 앞으로도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를 안아줄 시간이 없는 사회에서,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