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하고 싶은데,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를 보고 싶은 아빠가 마주한 사회의 벽

by 희라의 오늘배움

말을 할 줄 알게 되자, 아기는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했다. 신랑도 아침마다 자신을 보며 웃는 아기를 보자 출근하는 발걸음이 끈적해졌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도 아기가 자신을 부르면 꼭 안아주며 뽀뽀했다. 회사에서도 아기가 보고 싶어 베이비캠을 켠다고 했다. 주말마다 아기와 함께 놀아줬지만 월요일마다 아기는 더더욱 아빠를 찾을 뿐이었다. 퇴근 후엔 아기가 이미 잠든 시간. 결국 평일 다섯 날 중 아빠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신랑이 말했다. “둘째는… 내가 아이를 볼 수 있게 되면 낳자.”

법적으로는 남성도 1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법조문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육아휴직을 쓰는 건 비효율적이고, ‘6+6 제도’라는 이름으로 남성이 3개월을 써야 여성 육아휴직이 6개월 늘어났다. 그러나 여성이 회사로 복귀했다가 3개월 만에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결국 남성의 육아휴직은, ‘겨우 3개월 추가’에 그치는 셈이다.

심지어 올해 처음 시도된 정책이라 신랑 회사에는 선례조차 없었다. 1년 이상 쉬는 여성 육아휴직의 선례만 있을 뿐, 3개월만 쉬다 오는 경우에는 업무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3개월 휴직으로 팀 T.O가 채워질 리 없고, 결국 남은 사람들이 땜빵해야 한다. 그렇게 눈치 보며 일하다 보면, 평가에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사실 3개월만으로는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의미 있게 바뀌기 어렵다. 아이와 친밀감을 쌓는 데도, 육아의 리듬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출산 후 온몸의 관절이 아픈 것을 산후통이라고 하는데 의학적으로 산후통은 자궁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자궁이 분만 후 원래 상태대로 수축하면서 생기는 훗배앓이만 산후통인 것이다. 하지만 보통 느끼는 산후통은 손목, 무릎, 골반, 팔꿈치 등 온몸에 걸쳐있고 정작 훗배앓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가 ‘산후통’이라 믿었던 통증은 사실 육아통이라고, '닥터 앤 닥터 육아일기'는 말한다.

그 책은 산부인과 의사 엄마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빠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경제적 여건 상 엄마가 아닌 아빠가 아이를 키우게 되는데 덕분에 엄마는 3개월 만에 완벽히 몸을 회복하고 복귀하게 되고 아빠는 온몸의 관절통에 시달리게 된다. 아빠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으니 이는 육아통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도 4개월까지 친정엄마와 도우미분의 도움으로 산후조리에 전념할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관절통을 느끼지 못하다가 그 후에 시달렸다. 정말 이 고통이 산후통이라면 오히려 낳자마자가 가장 심해야 할진대, 오히려 처음에는 괜찮다가 아이를 홀로 케어하다 보니 그때부터 통증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용어만 봐도 그동안 육아가 얼마나 '엄마'에게 집중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엄마'가, '아빠'가 하고 싶은데 정부 정책은 "아이 걱정은 마세요. 우리가 봐줄게요. 당신은 그냥 일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아기는 내가 보고 싶은 이 마음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주 4일제, 4.5일제를 논의 중이라면 그냥 하루 6시간 근무로 줄여 무조건 4시 퇴근으로 하면 안 되는 걸까?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왜 아이를 낳은 여성을 차별할까? 아이를 낳으면 1년을 쉬기 때문이다. 그러면 업무의 공백이 생기니까. 그러면 아이가 생기는 남자도 1년을 쉬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포인트를 '아이를 낳은'에 두는 게 아닌 '여성'에 두면 직장에서의 남녀차별이 없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롯데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필수로 두고 이를 팀장평가에 반영하자 출산율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진짜 문제는 구조다. 하지만 육아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지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 '부모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지'다. 엄마든 아빠든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아빠도 육아를 하고 싶다고.

아빠도 아이의 첫말이 "아빠"였다는 사실에 울컥한다고.

아빠도 이유식 한 숟갈을 떠먹이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문제는 ‘아빠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세상이 아빠가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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