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사라졌던 나를 꺼내 준 글쓰기
으앙 하고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내 알람이다. 그게 몇 시이든 상관없다. 아이가 일어나면, 나도 일어난다. 일단 분유를 타서 입에 물리고 기저귀를 간다. 그것이 매일 내 하루의 시작이다. 새벽 5시일 때도, 아침 8시일 때도 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커튼을 친다. 그래도 이제는 새벽에 자주 깨지 않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연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삶은 완벽하게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졌다.
처음에는 버겁기만 했다. 나는 언제 먹고 언제 자고 언제 쉬지? 나름 잠을 안 자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그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은 기분이었다.
출산 후 몇 달간 나에게 시계는 몇 시인가가 아니라 수유시간이, 낮잠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도구였다. 왜 울지? 아 배고프겠구나. 왜 칭얼대지? 아 잘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사라진 나의 일상 속에서 가장 괴로웠던 건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곱씹고, 연결하고, 말로 풀어내는 그 행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던 활동들. 그 모든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때, 나는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만났다.
책에서는 '터널링'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결핍이 우리를 특정 문제에만 과도하게 몰입하게 만들고, 그 밖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고 했다.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아기를 챙기느라 내 점심은 잊기 일쑤였고 식탁에 앉아한 끼를 먹기도 어려웠다. 저녁에는 낮에 힘들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놀다가 밤늦게 잠들었다. 그렇게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며 체력은 점점 무너져갔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아이를 대할 때의 인내심도 얕아지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아기의 순간들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없을 때도 많았다. 처음 아기가 되집기를 했을 때도, 분유병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늦게 알아차렸다. 이렇게 나는 감정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결핍에 시달리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에서 사람들은 긴 시간을 주더라도 결국 데드라인이 다가와야만 이를 체감하고 효율적으로 능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결핍이 있을 때 오히려 이를 잘게 쪼개보면 도움이 된다는 말을 읽고 시간을 쪼개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쓰기'였다.
임신 때부터 써왔던 일기. 잠들기 전 10분,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했고 당장 해야 할 것들만 생각하며 보내는 터널 같은 하루하루에서 나를 간신히 돌아보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기였지만, 아이를 낳고 일기장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아기가 어떤 행동을 '처음' 했는지, 오늘은 왜 이토록 피곤했는지, 아이한테 화를 낸 나 자신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그렇게 나는 씀으로써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쪼개며 이를 더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생각했다. 평소에 읽기만 했던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누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토끼잠자는 틈틈이 메모장에 문장을 쌓고, 한 번에 편집해 올렸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도 신기했고 내 글을 읽고 공감한다며 라이킷을 눌러주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감사했다. 처음으로 댓글이 달렸을 때는 너무 설렜다. 막연하게 반복되던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글로 정리되며 마음의 평안을 가져왔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후 나는 시간을 쪼개 쓰는 법을 배웠다. 아기가 잠깐이라도 낮잠에 들어가면, 이전에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 눈을 붙였지만 지금은 바로 메모장을 켜고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글로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고민한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숨을 쉬는 것 같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뇌에서 손 끝까지 퍼졌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오랜 꿈이기도 했다.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 강의하고 싶다는 꿈. 하지만 나만의 주제도 없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꿈을 저 멀리 접어두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할 말이 이렇게 많았다는 걸. 그리고 이 마음을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는 말한다. 결핍은 우리를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자각하고 구조를 바꾸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내 결핍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고, 쓰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만의 터널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육아는 ‘경력 단절’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육아는 ‘다른 삶으로의 연결’이었다. 아이 덕분에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아이를 재우지 못하고, 매일매일이 똑같이 고단하지만, 그 고단함 안에 단단한 문장 하나씩이 피어났다. 결핍 속에서도 생각할 여유를 가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시 글을 쓴다.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올리는 것. 그것은 결핍에 빠진 나에게 ‘터널링’에서 빠져나오는 작은 출구였다. 그리고 그 출구를 통해,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