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커리어 사이, 엄마가 마주한 현실과 고민
6개월이 되었다. 아기가 드디어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3시간에 한 번씩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우던 신생아 시절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드디어 육퇴를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회사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어린아이를 어떻게 하루 종일 떨어트려 놓지?
출산 전에는 막연히 생각했다. '6개월이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겠지?' 하지만 6개월이 된 아기는 이제 겨우 혼자 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직 말은커녕 옹알이만 할 수 있었다. 돌이 되어도 겨우 걸음마를 떼거나 몇 가지 단어를 말할 수 있다던데... 뉴스에서 본 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적어도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아이가 내게 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거 아닐까?
원래는 믿을 수 있고 퇴근시간까지 맡길 수 있는 회사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오후에 돌아가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만 덩그러니 앉아 엄마를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복지가 있는 회사에 다니는 게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생각해 보니 동료들의 시선과 무언의 압박, 그리고 쌓여가는 업무까지. 야근도, 회식도 모두 빠지면서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출퇴근시간까지 생각하면 야근이 없어도 아이의 자는 모습밖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너무 속상했다.
정말 다행히도, 시어머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에게 맡길 수 있다니. 하지만 시댁 근처로 이사 간다는 결정은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새로운 환경, 익숙하지 않은 동네,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지내는 일상은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어머님께 맡기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 맞나 싶어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사하며 드는 집값, 어머님께 드릴 보육비... 그 둘만 더해도 웬만한 회사원의 실수령 월급을 훌쩍 넘었다.
그제야 '경단녀'가 왜 생겨나는지 이해가 갔다. 가만히 있어도 마이너스인데 굳이 출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같은 제로섬이라면, 혹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엄마가 아이 곁에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경단녀'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 총합보다는 많이 벌고 있기에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아닌 많은 여성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 대기업이기에 모두 쓸 수 있었지만 누군가는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 출산 후 세 달 만에 복직한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 제도 자체가 전문가들이 말하는 36개월까지의 가정보육은커녕 그 절반인 18개월조차 채우지 못한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회의실에서의 긴장감과 프로젝트를 완성했을 때의 희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내 자존감의 근원이었다. 회사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평범한 1인으로서 나는 그곳에서 자부심을 얻고 있었다. 출산은 신성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승진도, 성과급도, 인정도 따르지 않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했던 그 어떤 일보다 고되고 예측 불가능하고 체력적으로 힘든데도 말이다.
'육아휴직 복직 첫날, 울지 않는 엄마는 없다'라는 말을 아직 복귀가 반년 남은 벌써부터 떠올리며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작은 숨소리, 오물거리는 입술,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그 옆에서 나는, 또다시 흔들린다.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 욕구와, 엄마로서 아이 곁에 있어야 하는 책임감 사이에서, 내 마음은 갈팡질팡한다.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나를 지키면서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아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문득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답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질문을 멈출 수 없다. 그저 아이와 나를 위해 가장 나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엄마도, 한 인간으로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는 흔들림일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
오늘도 나는 흔들리면서도 아기의 곁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