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으로 쌓아 올린 인류의 시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혹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로 약육강식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인다. 경쟁하고, 이겨야 하고, 앞서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아기는 생존 능력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살라고 먹여줘도 뱉고, 게우고, 졸려도 자는 방법을 모를 정도로 생존을 위한 발달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 심지어 울음조차 정확한 의사 표현이 아니라, 그저 불편함의 신호에 가까운 것 같았다. 아기가 기본적인 욕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졸린데도 잠들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며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인간은 이렇게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면서도 멸종하지 않고 긴 역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브라이언 헤어와 바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생존 능력을 타고나지 않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다른 사람 종이 사라져 가는 동안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이유를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라고 소개한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는 동물들에 비해 한없이 여리게 태어나는 인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의사소통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데, 이것이 침팬지와 가장 다른 부분이라고 한다. 각자의 몫을 차지하거나 더 앞서기 위해 고립되기보다, 마음을 주고받고 감정을 읽으며 서로를 향해 다가설 줄 아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친화력을 통해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연결하고,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며 현대 문명을 창조했다.
책에서 가장 독특했던 표현은 ‘자기 가축화’였는데, 이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스스로를 더 순해지도록 진화시킨 존재라는 말이 신기했다. 보통 진화는 점점 더 강해지고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 자연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러나 인류는 이 과정을 통해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해, 육체적으로 뛰어나지 않음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간은 ‘우리’와 ‘남’을 구분하고 위협이 된다고 느끼면 바로 혐오감을 느끼며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優) 자생존’은 서로 다른 개체들이 의지하고 상호보완하면서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생존한 종으로 만들었다. 다정함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자 종의 진화를 이끈 힘이었던 것이다.
먹이지 않으면 죽는 아기, 재우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아기. 그 무력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품고, 먹이고, 기다려준 누군가가 있었기에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서로를 돌보았고, 그렇게 약함을 계기로 살아남았다. 약함을 품는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어져왔다. 그리고 지금,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며 그 손길의 연장선에 내가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렇게 나는, 이 아이로 인해 다시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밤새 아기를 안아주고, 재우고, 달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반복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바로 인류가 살아온 방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기를 키우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그저 육아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천 년 이어져온 돌봄의 고리를 잇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나의 몸과 마음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질문들이 매일같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부모로 성장시키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매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감각을 느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돌봄의 연쇄 속에서, 지금은 내 차례를 살고 있다는 느낌. 나의 하루하루는 개인의 시간을 넘어, 종의 시간을 이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는 나의 삶을 확장시키고, 나는 아이를 통해 인류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무력한 생명체가, 나를 부모로 자라게 하고 있었다. 그 관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강해지고, 다정해지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흔들던 그 밤, 나는 ‘다정함’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 힘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이 다정함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본질이 아닐까.
약한 자가 살아남은 게 아니다.
다정한 자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