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의 생존 본능 부재에 충격받은 초보 엄마의 질문
아기를 키우며 가장 놀란 점은, 아기가 할 줄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기니까 울겠지.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그것뿐이니까. 그 건 각오하고 있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인간의 본능이라 믿었던 먹고 자는 일조차 스스로 하지 못한다는 것. 아기의 모든 생활에는 엄마가 필요했다. 눈을 떠서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기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새끼들은 태어난 직후에도 냄새를 따라 젖을 찾아간다는데, 아기는 입에 젖을 물려줘도 거부했다. 물더라도 몇 번 빠는가 싶더니 금세 울기 일쑤였다. 애써 먹인 후엔 트림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토해내기 일쑤. 그렇게 힘들게 먹인 모유마저 입에서 줄줄 흘러내릴 때면 허탈해졌다.
어느 날은, 힘들게 짜낸 모유를 겨우 10ml 먹고 다 토해버리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유 짜는 게 얼마나 힘든데... 손목도 아프고 가슴도 얼얼했지만, 무엇보다 억울했다. 영양분이 많다길래 먹이고 싶어서 유축까지 했는데, 그걸 또 다 토해내다니…. 그게 짜증인지 슬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혼자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먹이는 것도 이렇게 서툰데, 재우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 있을 정도로 ‘잠’은 본능 중의 본능이라 믿었는데, 아기는 졸려도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든 깨어 있으려는 듯 몸을 비틀고, 눈을 비비며 울었다. 마치 잠드는 것이 세상의 끝인 것처럼. 그 작은 몸이 세상이 끝난 듯 울고 있을 때, 나도 함께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가는 자기 몸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혼자 팔을 휘두르다 얼굴을 맞고 울기도 했고,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 신기한 물체처럼 바라보는 데까지 몇 달이 걸렸다. 그 손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까지는 또 몇 달이 더 필요했다. 인간의 아기는 이렇게 자신의 몸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러다가도 아기가 한 번씩 눈을 마주치며 씩 웃으면, 나도 어느새 웃고 있었다. 배냇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기도, 나도 지금은 생존을 연습하고 있으니 당연히 미숙할 수밖에 없다는, 자꾸만 잊고 있던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긴,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나도 졸린데 잠이 안 와서 밤새 뒤척일 때가 있는데, 태어난 지 200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저 눈이 무거워지고, 머리가 붕 뜨고, 세상이 흐려지는 그 감각이 낯설고 불안한 거겠지.
흔히 아기를 ‘다른 행성에 떨어진 외계인’에 비유하곤 한다. 자궁 안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내 인식과 몸이 따로 놀고,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곳. 갑자기 다른 행성에 떨어져 내 몸부터 중력까지 지구와는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나라도 이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해하려고, 매 순간 노력했다.
그 노력과는 별개로, 자꾸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왜 인간의 아기만 이렇게 무력할까?’ ‘이렇게 생존 본능이 없는 생명체가 어떻게 수천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눈이 잔뜩 내린 숲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한 장면이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인간은 아기만 생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른조차도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사막 한가운데,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인간은 그런 곳에서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살아남았고 심지어 역사를 만들었다. 공동체 안에서 먼저 경험한 사람들에게 배우고 익히며 서로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기에, 인간은 살아남고 진화해 왔다. 혼자 살아남을 수 없기에,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부른다.
그렇게 인간은 약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살아남았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아기라는 연약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품고, 먹이고, 기다려준 누군가가 있었기에 인간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되어 처음 마주한 아기의 무력함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동시에 어떤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이토록 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약함이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더 엄마로 만들었고,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