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덜 해보니, 일의 민낯이 보였다

‘가짜노동’을 자각하게 된 단축근무의 역설

by 희라의 오늘배움

두 번째 임신을 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조심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임산부 단축근무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는 12주까지는 보통 회사에 말하지 않아 사용하기 어렵지만, 간절했던 나는 4주에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회사에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하루 6시간씩 근무로 조정할 수 있었지만 팀 내 추가 T.O. 는 없었기에 업무량을 따로 재조정받지는 않았다.


정상 근무를 할 때 나는 보통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여 30분에서 1시간가량 늦게 퇴근하며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근무했다. 당연히 야근을 하는 날도 있었기에 월간 15~20시간 정도의 추가 시간을 근무했다. 혼자 재택을 했기 때문에 누군가와 티타임을 하거나 빈둥거리지도 않았건만 그 정도의 추가 시간 근무는 당연했다.


하지만 단축근무를 시작한 후, 하루 2시간 덜 일하는데도 제한된 시간 안에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때로는 근무 종료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다(모든 근무를 마치자 딱 3시 59분인 경우도 많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하루 6시간만 근무하면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시간을 줄였는데, 업무량은 여전했다. 주어진 시간이 적어지며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정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됐다.


그때 접한 책이 [가짜 노동]이었다. 과거 케인즈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기계가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게 된다면, 2030년쯤에는 평균 노동시간이 주 15시간까지 업무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203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업무시간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52시간제마저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책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분석한다. 바쁘지 않다는 말이 사회적으로 금기라는 것, 관리자가 너무 많고 책임 회피를 위해 의사결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 등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것들로 하나하나 정말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는 '파킨슨의 법칙'을 설명하며 나온 영국 정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제국주의가 사라지며 식민지는 줄어들었지만 당시 공무원 수는 450% 증가했다고 한다(1935년→1954년). 관리해야 하는 나라는 줄어드는데 이를 관리하는 사람의 수는 몇 배로 늘어나다니, ‘일은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려 한다’는 법칙이 생생하게 증명된 셈이다.

그 외에도 여러 사례들을 기반으로 왜 가짜 노동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를 왜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로 인한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작년에 삼성이 임원들을 대상으로 주 6일제를 부활시켰고, SK도 그 뒤를 이었다. 임원들이 나오니 직원들도 당연히 나오게 될 테고 일부 유통사들도 따라가는 듯한 추세이다. 동시에 삼성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감행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뉴스를 보고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 6일제를 부활시켰다는 것은 업무시간이 모자란다는 뜻인데 희망퇴직을 감행한다는 것은 쓸모없는 인력을 거세하겠다는 의미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지? 그렇다면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일을 재분배하여 기존의 주 5일제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시절, 노동시간은 곧 생산량이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회사에 헌신하고 여가시간은 사치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일했다. 삼성은 아마도 그때를 기억하며 몸집을 줄이고 남은 사람들을 갈아 넣으면 그때의 영광을 되찾으리라는 시대착오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 사업이 대부분이라 '시간=생산량'이라는 공식이 성립했으나 현재는 서비스업 기반이 대부분이며, 심지어 이번 주 6일제는 '임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역시나 모순적이며 어딘가 이상한 논리다.


우리나라의 경영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 가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다 잘라버리고 인력을 효율화해야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것이 바로 직원들이 가짜 노동에 대해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인데도 말이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입장차이로 인해 과거의 경제학자들이 예측했던 업무시간이 줄어들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세상이 오는 것은 현재로서 요원해 보인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업무의 효율화가 이루어지고, 가짜 노동으로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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