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갖기로 했다

DINK에서 엄마로,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움직인 시간

by 희라의 오늘배움

나는 원래 딩크족이었다. 결혼은 당연히,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는 가정조차 해 본 적 없었지만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우리를 키우느라 이름이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가 되는 것도 싫었고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커리어에 해가 되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되며 얻는 것들은 추상적이고 와닿지 않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명확하게 눈에 보였다. 주변에 언니들도 아이를 낳고 힘들어하며 자신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갖지 말라고 말했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또 다른 생명을 만들고 키워내는 것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워커홀릭에 가까웠던 내가 커리어를 포기하고(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는 것은 우선순위 저 멀리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남편과 반반 육아를 담당한다는 회사 선배도 만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를 만나며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내가 생긴다는 말도 들렸고 이 사람을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함께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다. 그런 사람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며 아이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3년 정도 신혼 생활을 즐기고 나니 이제 아이를 낳는다면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산으로 인한 난임도 주변에 드물지 않게 눈에 띄어 만 35세라는 노산의 벽을 간당하게 남기고 싶지는 않았고 이왕 갖는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져야 몸의 부담도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임신 소식을 들었다.


힘들지만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틀 동안 과일 하나를 겨우 먹는 등 입덧이 심해 8kg가 빠졌지만 그래도 배 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기를 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2주~1달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서 태아의 성장을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조리원도 예약하고, 태교여행도 다녀왔다. 하루하루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런 설레는 마음을 안고 회사와 육아휴직 날짜를 협의한 8개월 차였다.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컨디션 탓이겠지, 내가 둔해서 못 느낀 거겠지 하고 넘겼다. 그렇게 3일 후 아무래도 이상해 산부인과에 가니 아기의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내 귀를 의심했고 머리가 멈췄다. 의사 선생님께 무슨 뜻인지 되물었다. 아무런 증상도, 느낌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차라리 뭐가 이상하기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그 후로 많은 검사를 했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원인불명으로 그냥,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8개월이면 낳아도 현대 의학으로 어떻게든 살릴 수 있는 주수다. 그 사실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왔다면, 더 큰 병원에 다녀서 미리 알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책하고 남편 볼 면목도 없었다. 모두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심한 충격은, 8개월이면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란 터라 실제로 출산을 해야 했다. 출산은 했지만 아기는 안아볼 수 없었던 나는, 유도분만으로 실제 진통까지 겪으며 아기를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매일 밤하늘만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당연히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심리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공허했다. 남편은 우리에게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을 주나 보다며 다시 와 줄 거라고 말했지만, 두 번째 임신에 성별이라도 다르다면 이 아이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하늘로 간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그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함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으며 아이를 생각했다. 잠을 좀 잘 수 있게 되자 그다음부터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 했던 나날들을 기록하지 않아 잊어버리게 될 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몸도 준비했다. 산부인과에서 이제 되었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임신을 준비했고, 그리 길지 않은 준비 끝에 다시 아이를 가졌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자 눈물이 흘렀다. 다시 와 줘서 고맙다고, 다시는 보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다시 나는 사랑에 빠졌다.


2주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다니고, 나머지 주차에는 동네 산부인과에 다니며 일주일에 한 번씩 아기의 상태를 계속 체크하고 집에서도 심음측정기를 통해 아기의 심장소리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태동이 느껴진 후부터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측정기를 켰다. 태교여행은커녕,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8개월에는 회사도 휴직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아이를 품에 안으며, 나는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