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육아 속에서 깨달은 질문의 중요성
당신은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까?
한국 사람 중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교육체제 속에서 질문보다는 답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의 "질문 있는 사람?"이라는 질문에 진짜 질문을 하면 수업이 늦게 끝나게 만든 원흉으로 눈총 받기 일쑤다. 진짜 이해가 안 가면 따로 교무실에 가거나 아직 교실을 나서지 않은 선생님께 찾아가 쭈뼛거리며 여쭤보았다. 하지만 그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터라 많은 친구들이 그리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튀고 싶지 않아서, 혹은 이것도 모르냐며 타박받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우리는 질문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고 알아서 찾아보거나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Ai와 함께 살아가게 된 2025년, 우리는 답보다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답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Ai들이 해줄 테니 문제를 잘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하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육아를 하며 chatGPT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질문하느냐'였다. 내 질문 방식과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답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Ai를 사용하며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더 폭넓은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아기의 낮잠이 너무 짧을 때, 처음에는 단순히 “아기가 낮잠을 잘 안 자요. 어떡하죠?”라고 물었다. 그러면 답변도 모호하고 일반적인 조언만 돌아왔다. 그런데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6개월 아기가 40분 자고 5시 20분에 일어났는데 계속 졸려 보여요. 다시 재워야 할까요?”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곁들이면, 훨씬 현실적인 답변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 돌아왔다. 단순한 ‘질문’과 ‘좋은 질문’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육아 현장에서 체감한 것이다.
그때 만나게 된 책이 유선경 작가의 '질문의 격'이었다. 작가는 문장 끝에 물음표를 매달아 놓는다고 다 질문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세상에 잘못된 질문은 없다'라고 하지만 질문에는 분명히 옳은 방식과 잘못된 방식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질문하는 것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어떻게 질문해왔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한국인 치고는 많이 질문하는 사람이다. 상술과는 다르게 선생님께 찾아가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업무 중 회의 시간에도 질문을 통해 이해도를 높인 적도 많았다. 그러나 발표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면 곧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성격은 여러 모로 눈총 받기 마련이다. 이 책은 중립화된 질문으로 상대방의 오해를 피하고 비뚤어진 대답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전한다.
이처럼 질문은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거나 넓히는 힘을 가진다. 공격적으로 던진 질문은 방어적인 답을 불러오고, 열린 태도로 던진 질문은 예상치 못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이는 AI에게 질문할 때도 똑같았다. 막연히 “아기 발달이 빠른데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대신, “220일 된 아기가 벌써 크루징을 시도하고 있는데, 평균 발달 속도와 비교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면 답변의 깊이가 달라졌다. 질문의 방식이 대화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저자의 통찰을 나는 매일 실험하듯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정말 몰라서,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답을 알기 위해서. 육아를 하면서 하는 질문들은 한 가지 역할을 더 한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아기가 왜 우는 걸까?", "이 시기에 이러는 게 정상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드는 불안감에 부모는 언제나 질문하게 된다. 맘카페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올라오는 질문들은 사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확인의 욕구가 숨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육아는 결국 답을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내가 무엇을 묻는지가 곧 내가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육아라는 좁고 치열한 세계에서 던지는 나의 질문들은 “나는 어떤 부모이고 싶은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그래서 질문의 격을 높인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삶의 격을 높이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질문을 잘하는 법을 배우는 이유는 단지 AI에게서 더 나은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더 풍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왜?"라는 끝없는 질문을 쏟아낼 것이다. 그때 부모로서 단답형으로 답하기보다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되물으며 아이의 사고를 확장해주고 싶은 부모이고 싶다. 아이가 세상에 던질 질문에 귀 기울이는 부모, 그리고 다시 질문을 돌려주는 부모.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역할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언제나 더 나은 답을 얻기 위해서 질문하는 사람이고 싶다. 자기와는 다른, 자기가 모르는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상황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모든 상황에서 Next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