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회사원, 친구 그리고 나

사회생활과 육아 사이, 마음의 균형을 배우다

by 희라의 오늘배움

아기를 보러 집으로 찾아온 친구를 만났다. 만나면 언제나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솟아나서 수다를 떨 시간이 모자라던 친구였다. 며칠 전부터 설레어 있었고 친구와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에게 아이를 봐달라 부탁까지 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반가움도 잠시, 한두 시간이 지나자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이전에 자주 하던 회사 이야기도 해보고 아이를 귀여워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단순히 대화할 소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이전처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자꾸 대화의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기대와 달리 빠르게 집에 간 친구를 배웅하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친구가 돌아간 후 침대에 누웠더니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원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기가 빨리는 것 같아 싫어했지만 좋은 친구와 1대 1로 만나는 것은 매우 좋아하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도 피곤한 걸까. 남편이 지쳐있는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랜만에 사회성을 끌어올려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직 미혼인 친구라 마치 대학생과 사회인의 삶의 차이처럼,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너무 좋아하는, 오래된 친구이니 계속 인연을 이어가지만 어딘가 붕 뜬 느낌이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각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최대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대화가 겉돌고, 서로의 삶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공감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맞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이전과는 달랐다.


연속해서 이러한 경험을 하다 보니, 앞으로의 나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나이가 들며 깊은 관계인 친구들만 남았는데, 육아를 하다 보면 미혼인 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지려나? 앞으로 나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남은 친구들과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워질까? 나는 이제 그럼 가족밖에 남는 게 없는 걸까?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사는 걸까? 남자들은 안 그렇던데...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왜 엄마는 그때그때 살고 있는 지역 친구들만 만나고 오래된 친구가 없냐며 의아해하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업주부를 하며 우리를 뒷바라지하다 보니, 엄마 자신의 인연들은 모두 끊어진 걸까? 아니면 내가 지금 육아휴직 중이라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는 주요 관심사가 달라서 그런 걸까? 복직을 하면 좀 괜찮아질까? 잠시 인연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걸까? 너무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에서의 워킹맘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취미 대신 TV 프로그램 같은 피상적인 소재만을 꺼내던 그들, 주말에 뭐 했냐고 물으면 아이와 함께 무엇을 했다는 얘기만 하던 엄마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진짜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공감을 해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주말을 자유롭게 쓰는 미혼들과는 달리, 주말에라도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던 그들의 심정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러면 아이를 가진 친구들과 만나 육아 중심으로 대화가 흘러간다면 내가 정말 즐거울 수 있을까? 지금보다 할 말은 많아질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은 내 이야기가 아닌 아이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친구를 만나며 진정으로 즐겁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며 친구들을 만나려면 시간적으로도 압박을 받는데, 심지어 만나서도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니... 이러나저러나 예전처럼 친구들과 자유롭게 웃고 떠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우울해졌다.


앞으로 나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워킹맘인 이전 회사의 사수가 생각났다.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좋은 엄마 또한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드를 스위치처럼 껐다 켠다고 한다. 사회인 모드와 엄마 모드. 그것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의 고민을 회사로 가져가지 않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내 마음속에서 모드를 조절하면 친구와의 관계, 사회생활, 육아 모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존재하지만, 마음을 조금씩 분리하고 역할을 나누면 조금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피로와 우울감까지도,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과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모드를 조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역할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나 ‘나 자신’ 임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날 때,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회사에서 역할을 수행할 때, 나는 항상 조금씩 나를 조절하고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든 만큼,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정하며 위로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오늘의 피로와 불안, 답답함, 우울감 모두 나의 일부이며, 새로운 역할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지켜가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친구와의 관계도, 사회생활도, 육아도 모두 조금 더 즐겁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는 느낌이 들며 마음 한편이 부드럽게 풀릴 것임을 나는 믿는다. 모든 곳에서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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