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별 스위치를 켜고 끄며 찾는 나의 균형
불교에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고 피하려고 해도 만나게 된다는 이 말은, 잡히지 않는 관계로 괴로워할 때 나를 다독여준 말이기도 하다.
한 때 너무나도 친했고 특별한 계기도 없었는데 자연스레 멀어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언제부터 친해졌는지도 모르게 항상 붙어있게 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순간 멀어진 사람을 붙잡아보려 연락하고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상처받던 나는 이 단어를 알게 되고 흐르듯이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인 것 같다.
저자는 때때로 관계에서 실패할 때마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는 관계가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곱씹고 상대의 속마음을 염려했지만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는 완벽할 수 없다는 진실을 느꼈다고.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대학교 1학년 때를 떠올렸다. 대학교에 입학해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공통점이라곤 없는 것 같았지만, 그렇기에 더 서로를 보완한다고 느꼈던 친구였다. 1학년 내내 붙어 다니고 겨울방학이 지나 만났는데 갑자기 나를 모른척하며 엄청나게 싫어했다. 영문을 몰라 이전처럼 친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친구는 나를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뒤에서 나를 욕하고 다녔다.
이해가 가지 않아 친구를 찾아가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왜 갑자기 그러는지' 물었다. 친구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그냥 싫다'며 이유가 꼭 있어야 하냐고 답했다. 이후, 멀어진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해 많이 고민하고 곱씹어 보았지만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의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친구는 대학 동기들에게 나를 욕하고 다닌다고 한다. 도대체 나의 무엇이 그 친구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는지, 나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이제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벗어났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나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친구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일방적인 노력으로 지탱되는 관계는 곧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언젠가 또 다른 핑계로 결국 멀어졌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 모든 관계는 내가 애쓴 만큼 이어지는 게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나는 법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친구들을 만나면, 어딘가 모르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서로를 배려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각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최대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대화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가슴에 왠지 큰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며 깊은 관계인 친구들만 남았는데, 육아를 하다 보면 미혼인 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지려나? 앞으로 나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남은 친구들과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워질까? 나는 이제 그럼 가족밖에 남는 게 없는 걸까?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도서관에서 만난 책이었다.
저자는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순간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워킹맘으로서 가정과 회사, 친구들 사이에서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고 싶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균형이 아닐까. 중심을 잡고 균형을 찾아서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균형을 잡기 위해, 나는 사회인 모드와 엄마 모드, 그리고 친구 모드로 스위치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니 집에서 온전히 엄마 모드지만 반년 후 회사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그 스위치를 켜고 끄는 연습을 해보았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 사회인 모드를 켜고 차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업무에 집중하다가도, 가끔씩은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며 아이를 떠올리겠지.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한다면 오히려 다른 모드의 내가 사회생활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드는 것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주고받는 대화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물론 회의 중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집에 와서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은 흔들리고 스위치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완벽한 균형이란 없기에, 그 많은 노력의 순간들이 더 좋은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리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지 않으며 모든 자리에서 행복해지고자 한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