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완벽주의자 엄마의 육아일기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로

by 희라의 오늘배움

'엄마'에게는 정말 많은 말이 쏟아진다. "엄마라면 응당 이래야지", "엄마가 잘 챙겼어야지" 등등. 참 이상하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 사회에서도 아이의 문제는 언제나 엄마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엄마는 '완벽한 존재'여야만 한다. 심지어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라 모든 육아의 책임이 내게 돌아오고 있다.

24시간을 모두 아이에게 맞추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잘되면 고생한 흔적은 지워지지만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곧바로 나의 탓이 된다. 그 상황이 답답해 남편에게 여러 번 육아 휴직자를 바꾸자고도 이야기했지만,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기 쉽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이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뿐이었다.


돈을 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조차도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완벽'은 실체화되기 어렵다. 그러다가 이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나 다시 집어 들었다.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이 책은 스스로 만든 이상적이고 완벽한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며 사는 불안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그들은 스스로가 정한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엄격한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는 삶은 성취도를 높이기도 하지만 자기비판에 휩싸여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엄마'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미디어에서 나오는 온갖 좋은 엄마들의 사례를 수집해 이상향을 만들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SNS에는 모든 것에 꼼꼼한 엄마, 언제나 다정한 엄마 등 너무 많은 ‘좋은’ 엄마들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엄마가 ‘완벽한’ 엄마인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언제나 모자란 엄마인 것 같았고, 차라리 남편에게 육아를 맡긴 채 회사로 도망가고 싶었다. 아이를 재운 밤이면 언제나 오늘 더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며 죄책감을 느꼈다.


이 책은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에 대해 말한다. 이 둘은 과정과 결과 중 어디에 집중하는가, 노력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적응적 완벽주의와 달리,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혹독한 자기비판을 기반으로 실패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완벽하고자 노력했을까?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내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상적인 딸로서 좋은 직장을 다니고, 모범적인 직장인으로서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스스로 붙인 꼬리표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데, 그 꼬리표에 충실하고 싶다는 집착이 오히려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기들은 6개월부터 이유식을 먹는데, 한 끼에 몇 g 먹는지 책마다 달라 무엇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철분 등의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게 식단을 짜줘야 한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한 숟가락을 밀어 넣으며, 나로 인해 아이의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떤 날은 탄수화물을, 어떤 날은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가. 지속적으로 부족하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영양사가 아닌 이상 모든 끼니의 영양 균형이 맞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저울이 아닌 아이의 표정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떻게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지를 관찰했다.


이 책은 완벽이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 정의조차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을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닌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내 시선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충만함을 느꼈다. 그래, 이 웃음을 보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제껏 그 방향이 잘못되었구나. 책이나 SNS가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아야 했구나. 결국 무언가를 잘하는 엄마가 아닌, 내 아이를 보는 엄마가 좋은 엄마였다.


이를 깨닫고 내가 어떤 엄마이기를 바라는지를 고민해 보았다. 나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따뜻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했다. 그 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적은 체크리스트를 내려놓았다. 대신 우리 아이의 변화에 감탄하며 그날의 성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아이가 어떤지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더니 아이의 웃음과 눈물에 담긴 니즈가 보였다. 아이를 집중해서 바라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일의 나는 다시금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조바심을 낼 수도 있다. 다른 엄마들은 이미 무엇을 해주었다는데, 우리 아이만 뒤쳐지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품에 안기는 아이의 표정을 먼저 살피고자 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무언가를 많이 해주는 엄마보다, 아이와 마주 보고 함께 웃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일 거라고 믿으면서.



이전 17화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