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희라의 오늘배움

아이를 낳는다는 건, 세상 끝까지 사랑할 존재가 생긴다는 의미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에게서 자유로운 시간을 갈망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나와 딱 붙어있고 싶어 한다. 아기는 손을 다룰 수 있을 때부터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맘마를 먹다가, 가만히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보석 감정사처럼 내 손을 이리저리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누군가가 내 손을 이렇게 구석구석 바라본 적이 있을까. 나조차도 아기의 손가락을 이렇게 관찰하지는 않는데, 도리어 아기에게 이렇게 관찰당하는 기분이라니. 이렇게 자그마한 손 끝이 나를 스칠 때, 자그마한 눈이 나를 좇을 때 나에 대한 순수하고도 끝없는 사랑을 느낀다.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오히려 나 자신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승진에, 이직에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집에 박혀 최신곡은커녕 동요만 듣고 있었다. 이 시기에 어느 정도의 발달이 되어야 하는지를 KPI처럼 체크하고, 적정 수유량과 수면시간을 계산하며 스스로가 엄마로서의 점수를 매겼다. 그러다 문득, 나는 없어지고 엄마로서의 나만 남아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때, 나는 책을 찾았다. 아이가 잠든 밤, 고요히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오롯하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그때 그때 고민하던 주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 책은 그 생각들을 담은 글이었다. 지켜지지 않는 다짐들도 많았고, 매일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지만, 글을 적고 깨달음을 기록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힐링하고 나면, 다음 날에는 아이를 볼 때 조금 더 아이 자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지금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아이의 꼼지락대는 손가락을,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조금 더 오래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들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한 하루의 끝, 잠든 아이를 보면 내가 오늘 해낸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느끼며 마음속 어딘가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비로소, 육아가 나의 시간을 삼켜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의 순간들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천천히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한 사람과 한 순간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결심들을 모두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매일 부지런히 자라는 아이 덕분에 돌아서면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나고 그러다 보면 이전에 했던 다짐들은 자연스레 잊어버린다. 하지만 새해 목표를 적어두고 매일 보는 곳에 붙여두면 잊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순간순간의 깨달음을 글로 적어두면 어제보다 나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며 시작한 글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8개월 동안 자란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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