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마지막 날
육아휴직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로 복직은 아직 일주일 가량 남았지만 나 혼자 아이를 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분명 지난 달부터 이제 한 달 안 남았네, 2주밖에 안 남았네 하며 날짜를 헤아렸지만 막상 복직이 다가오니 느낌이 이상하다. 한 달 전, 사람들이 내게 회사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떠냐 라고 물었을 때는 이제 충분히 쉰 것 같다, 일하러 가도 될 것 같다며 말했지만 막상 오늘이 되자 집에 두고 갈 아이가 눈에 밟힌다. 생각해보면 지난 주까지만 해도 '내가 다시 회사에 간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어제부터는 '이제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것 같다.
일이 주는 성취감을 좋아했던 나는, 육아휴직 기간 중에 생산성이 없는 것 같다는 자괴감에 빠져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다. 물론 초반에는 난생 처음 해보는 육아라는 것에 정신없이 끌려가기에 바빴지만, '엄마'라는 역할이 적응되는 5~6개월 즈음부터는 글을 쓰고(브런치 시작), 난생 처음 수영을 배우고, 시간을 쪼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도 했다. 육아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컨디션과 스케쥴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부지런히 나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육아휴직 기간을 조금이라도 알차게 쓰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잠든 사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런데 육아휴직이 끝나는 지금 되돌아보니, 지난 1년 동안 내가 좋은 엄마였나 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YES라고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의 눈을 충분히 바라보는 대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읽어주는 대신 해야 할 것에 정신이 팔리진 않았을까. 아이가 자는 동안 글을 쓰고, 수영을 배우고, 공부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충분히 집중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그 미안함에 잠식되어 마지막 날마저 눈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핸드폰은 던져놓고 아이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제나 나만을 바라보았던 아이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랑만 놀아도 이렇게 즐거운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자주 놀러오던 이모도 아는 사실을, 주 양육자인 내가 몰랐다니... 그동안 아이가 아닌 핸드폰을 보았던 모든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육아휴직은 그 어느때보다도 생산성이 높은 기간이다. 한 생명을 뱃속에 있을 만큼 작은 순간부터, 걸음마를 하고 자기 표현이 가능한 사람으로 키워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자본주의의 틀에 갇혀, 그동안 생산성을 돈으로만 치환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가 동네를 거닐며 "앞으로 할머니 말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잘 놀고 와서 엄마랑 저녁에 보자" 라고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그러자 조용히 구경하던 평소와 달리 아이가 "이건 뭐야?" 라며 말을 걸어왔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설명해주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마치 영영 헤어지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는 낮잠도 안겨서만 자는데, 가끔 엄마만 달래지는 울음도 있는데, 진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사실 나의 상황은 다른 워킹맘들에 비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시터가 아닌 조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시고, 주 1회만 출근하며 나머지 날들은 재택으로 근무할 수 있다. 물론 복직 초반이나 회의/미팅이 있으면 추가로 더 출근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를 아예 못 보는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한 엄마는 모두에게 죄인이 되는 느낌이다. 아기에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봐주시는 어머님께도, 회사 동료들에게도 워킹맘은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다.
돌이 갓 지난 우리 아기는, 요즘 말이 조금씩 트이고 있어 너무나도 귀엽다. 바나나를 보고 "바"라고 말하고 고구마를 보고 "고" 하고 말한다. 잠잔다는 말이 들리면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우뚱하고 사랑해요 라고 말하면 머리 위에 양 손을 올려 하트를 만든다. 걸음마에도 재미를 붙여 내 손을 잡으면 삑삑이 신발을 신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앞으로도 내가 회사에 출근한 동안, 우리 아이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부쩍부쩍 클 것이다. 어느샌가 돌아보면 또 새로운 것을 배워 내가 모르는 단계로 나아갔겠지. 엄마로써, 부모로써,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이제 다시 나의 세상으로 씩씩하게 걸어가 보려 한다. 나에게는 아직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