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첫날. 엄마도, 회사원도 되지 못한 이방인
복직 첫날이다. 다행히도 친정엄마가 올라와 계셔서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아이도 할머니랑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지, 집을 나서는 나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아빠, 이모,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의 손길을 타며 자란 아이의 적응력이, 오늘따라 고맙고도 짠했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눈 앞에 아른거렸지만, 막상 눈 앞에 회사가 보이니 그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 순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처음이 아니라 돌아온거야. 나는 이 걸 10년 넘게 해왔어.' 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회사 로비에 들어서니 익숙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다행히 1년 반만에 만난 사람들은 그대로였고, 다들 복귀를 환영해주었다. 그들에게 받은 따뜻한 응원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팀장님과의 복직 면담에 참석했다.
1년 반 동안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러 번의 조직 개편이 있는 동안, 팀장님이 그대로 계셔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러니 그 시간 동안, 내가 아는 것이 모두 사라지고 내 업무도 완전히 바뀌어 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업무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신규 사업이 시작되는 동안 내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고 나는 10년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회사를 떠나 있는 동안 머리가 굳었는데,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덜컥 걱정이 앞섰다.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라서 나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는 것은 이전과 비교되지 않으니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0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 모 아니면 도 일 것 같았다.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모두 바뀌어 혼란스러운데, 업무의 자유도도 너무 높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대는 것이 맞을지도 알 수 없었다. 기존에 진행하던 방식이 있어 그대로 따라도 되지만, 아예 새롭게 만들어도 된다니. 내게 기대하는 것이 많아 개척할 기회를 준 것인지, 기대치가 낮아 실패해도 티가 나지 않는 업무를 준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았다.
퇴근시간. 어차피 이번 주는 그동안의 변화를 팔로업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몸과 복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아이는 하루종일 나를 찾지도 않고 잘 놀다가 방금 잠들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이 곳에도 저 곳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제대로 일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집에서는 아이를 돌보지도 못하는 사람.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결국 둘 다 놓쳐버린 사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은 아침의 설렘을 잃은 채 초라해보였다. 물론 오랜 기간 쉬다 온 첫날 모든 것을 기존처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원래 회사로의 복귀가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한 기분이랄까. 처음 보는 용어들과 맡게 된 업무들로 머릿속이 모두 엉켜버린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오늘 받은 업무를 정리해보았다. 찬찬히 다시 생각하니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10년 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은 결국 내 커리어에 새로운 글씨를 새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같은 팀 내에서 진행하는 일이니 오히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로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내 시야를 가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회사원도, 엄마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쩌면 그러한 이방인의 시선이야말로 굳어버린 내 업무에 필요했을 것이라고 믿으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직장인도 될 수 없는 '워킹맘'의 첫날.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낯선 세상에 적응하며 커가듯, 나 역시 '워킹맘'이라는 새로운 이름표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