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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ug 10. 2024

걱정마세요


"없어지면 안 돼요.", "문 닫으실까봐 걱정이에요,", "꼭 오래 해주세요. 꼭이요."

책방을 찾는 이들이 수줍고 간절히 건네는 말이다.

 

가까이 하나쯤은 있어주어야 하는 곳,

폭풍같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곳 안전한 곳,

봄꽃 열리면 시집 한 권 충동구매 하는 곳 설레는 곳,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글자 읽다 꾸벅 조는 곳 마음 놓이는 곳,

손끝으로 나란한 책등 쓸며 '다 읽고 싶어' 헛된 꿈 꿔보는 곳 간지럽히는 곳,

생일 맞은 친구 데려와 책 한 권 선물 인심 쓰는 곳 저렴한 곳,

주인은 분명 건물주일 거야 짐작하는 곳 오해하는 곳,

전부 사고 싶어서 한 권 고르기 힘든 곳 난해한 곳,

함께 책 읽고 글쓰고 수다 떨며 나를 발견하는 곳 다시 태어나는 곳,

다음 달까지 망하지 않고 생존해 있을까 조마조마한 곳.



"시는 현실로부터 조금 비스듬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고,

그 자리에 서서 자꾸 지금은 아니라고,

이곳은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다."

- 황인찬,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211쪽



책방 문을 열고 작은 공간에 몸을 들이면 채찍 같던 하루가 중단된다.

책방에 들어선다는 것은 나를 부수고 갈아 남들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놓았던 길에서 비켜서는 것이다.

눈, 광대, 입술, 쇄골, 손가락, 무릎, 정강이, 발등에 실었던 힘을 빼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경직된 얼굴을 풀고 어깨를 내리고 손과 다리를 부드럽게 움직여 원하는 곳으로 발을 옮겨 궁금한 것을 만져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방은 조금 비스듬한 자리에 서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쫓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치는 방법을 거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삶을 잇는 방식은 딱 인간의 수만큼 충분하고, 그러하니 아무 상관 없고,  

당신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기에, 자책할 필요도 좌절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리듬으로 당신은 당신의 그것으로 걸으며 가끔 서로를 바라보아 줄 수 있다는,

그렇게 우리가 따로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걱정 마시길.

이번 달 월세 걱정은 책방지기들에게 맡기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들어오시길.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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