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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Mar 12. 2024

대차게 존엄하게

『존엄하게 산다는 것』_책 읽는 마음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존엄하게 산다는 것』 60쪽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고 푸드코트 빈 자리에 앉았다. 첫술을 뜨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남자가 내 쪽으로 엉덩이 한 쪽을 들더니 뿌앙, 방귀를 뀌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남자는 대수로울 것 전혀 없어하는 표정으로 밥을 이어 먹었다.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는 '존엄'을

  v 외부의 요구로부터 나를 잃지 않는 것

  v 다른 사람의 태도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

  v 내면에 확신으로 뿌리박혀 행동으로 표출하는 관념

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그 때 나는, 2010년대의 대한민국, 어린 여자가 나이 든 남자에게 대거리 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고, 초면의 밥 먹는 어린 여자한테 아무렇지 않게 방귀를 뀌어대는 사람에게 공격을 받은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1초, 2초 지날수록 기분이 몹시 나빠졌는데 '나쁘다'는 개념으로 퉁치기에는 마음 어딘가가 뾰족하게 불편했다. 왜 불편한 건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한 거니까. 잘못 없이 당했고 가해자는 태평하니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밥이 무시 당했다. 오전 내 열심히 일하고 맞은 나의 점심식사가 그 남자가 뭐를 씹어 먹고 삭힌지도 모를 구린 가스에 못 먹을 게 되어버렸다. 

밥이 무시 당했다는 건 무얼 뜻하는 것인가. 내가 뀌는 방귀가 너의 일용할 끼니보다 우위의 가치를 지닌다는 그 인식은 나를, 나를...




게랄트 휘터의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고 알았다. 그때 내가 눈이 튀어나오게 그 남자를 째려본 뒤 거칠게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 쿵쾅거리며 자리를 옮겼던 것이 내 밥을 잃었던 것에 대한 분노였다는 것, 밥으로 잃은 나를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절박한 노여움이었다는 것을.


2024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지금, 나의 화두는 타인의 밥, 그이들의 존엄이다. 

사람 만나는 것이 아직 어려운 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른 신문을 읽고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렇게 낯선 신념을 쌓고, 더 많은 글을 읽어 이전에 쌓아놓은 신념을 흔들어 다시 쌓는 것. 계속하는 것, 그 과정을. 그렇게 나와 타인의 존엄을 귀히 여길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존엄을 행동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이 내가 대차게 꿈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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