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노트북도 못한다고? 사람이 올까?
가게 입구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카페에 대화가 없다니... 아주 특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사실 많다. 심지어 노트북 작업도 못하는 곳이다. 내가 이렇게 북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드리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카페라는 공간을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정의하는 곳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는 공간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도 그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이 카페에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가장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일까? 바로 대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인용하자면 인간은 인지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각자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카페는 의사소통을 위해 가장 좋은 장소이다. 식당은 밥을 먹는 곳, 카페는 대화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요즘은 소개팅도 카페에서 많이 하는 추세다.
두 번째로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즐기기 위함이다. 대부분 노트북을 들고 작업을 하러 간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때우러 간다. 이 3가지가 사람들이 카페를 가장 많이 찾는 이유이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카페에 있는 콘텐츠를 즐기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위 3가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일상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나의 카페는 이 3가지 중 2 가지를 못하는 곳이다.
대중성에서 멀어질수록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지만, 취향이 뚜렷한 사람만 온다는 건 시장의 크기가 작다는 것과 같다. 시장의 크기가 작으면 매출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원칙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이 원칙이 없어진 공간은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책 속에 둘러싸인 곳에서 마음 편하게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면 그 공간은 조용해야 하며 외부와는 단절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즉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여유와 연결되어 있다. 책으로 둘러싸인 카페는 주변에 찾으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대화소리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카페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공간의 인테리어를 제외 한 나머지는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서 이내 실망하고 만다.
이게 바로 과거와 지금의 나다. 25살. 육군 중위라는 계급으로 핸드폰도 못쓰는 전방 GP에서 매일 긴장감으로 고군분투하던 내가 몇 달 만에 휴가를 나가면 책이 있는 곳,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만이 내가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곳은 시끄러웠기 때문에 장소에 관계없이 커널형 이어폰으로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책을 읽었다. 에어팟이 나왔을 때는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고도 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항상 꿈꿔왔는데 그 공간을 발견했다.
바로 당시에 연희동에 있던 책바. 혼자온 손님을 반긴다던 그곳에서 난 황홀경에 빠졌다. 술을 잘 못 먹었기 때문에 도수가 가장 약한 보드카토닉을 시키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곳에서는 이어폰을 잘 끼지 않았다.
내 꿈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했다. '30년 후에 은퇴하면 꼭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지!'
벤의서재를 기획할 때 처음에는 대화만 없는 공간이었다. 초창기에는 작가님들이 와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키보드 소리가 음악소리와 분위기를 뚫고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리 조용히 해도 조용히의 기준에 도달하려면 키보드를 아주 천천히 누를 수밖에 없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한 손님이 유난히 소리가 큰 키보드를 들고 오셔서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소리가 나는 키보드와 마우스 역시 사용을 할 수 없다는 사전 안내를 했다. 그 당시에는 손님이 너무 없어서 키보드를 쓰는 손님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화도 못하고, 노트북작업도 못하는 북카페가 되었다. 이곳에서 즐길거리라곤 책과 글. 그중에서도 책을 읽는 행위뿐이었다. 이 어중간함으로 어떻게 가게운영을 시도할까 고민해 보니 대화와 노트북을 할 수 없지만 북카페라는 키워드를 넘어서 사람들이 여기서 좋다고 느낄만한 것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방법은 음식이 들러리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앞서 마들렌을 치열하게 만들었듯 음식이 들러리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대부분의 공간위주 카페는 음식이 비싸고 맛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 카페 후기를 둘러보면 의외로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 많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느낀 건 오감 중 한 부분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오감이 오각형을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즉,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조화가 깨지면 분위기에 이질감이 생기는데 이런 공간사업을 하는 곳 중에는 음식을 간과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음식에는 항상 신경을 쓰는 편이다.
두번째 방법은 공간에 있는 콘텐츠인 '책'을 사람들이 모두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화도, 노트북도 할 수 없는 우리 카페에 유일한 콘텐츠는 책이다. 가게에 비치해 둔 책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로 모두가 열람할 수 있다. 공간을 판매하는 곳은 책이 인테리어인 경우가 있거나, 판매용 책만 두는 곳이 있거나, 종류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곳은 만들 때부터 거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사람들이 콘텐츠를 들고 오지 않아도 내부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소설을,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를, 누군가는 에세이를, 누군가는 철학을 좋아한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취향을 모르고 책을 읽으러 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책을 고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난 가장 넓은 책장에 책을 정면으로 배치하고 큐레이션을 달아 놓아 사람들이 책을 쉽게 고를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소통이 부족한 점은 책으로 해소되기도 한다.
난 책을 읽으면 습관적으로 책 속에 코멘트를 달아 놓는데,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하고 생각을 공유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게 나름대로의 소통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나가면서 내 얼굴을 보며 웃으며 나가는 손님들도 있고,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손님들도 있다.
마지막 방법은 소통의 부족을 독서모임으로 채우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대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외로움이 가중되는 세상에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는 넘친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통해 조금 더 밀접하게 손님들과 소통한다. 독서모임을 오는 손님은 대부분 공간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손님들이 온다. 신기하게도 시장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요즘은 가게 손님들이 독서모임으로 유입돼서 같이 소통하기도 한다. 예전에 쌓아두었던 독서모임 진행실력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나의 말은 최대한 줄이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고 공감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남았다. 이게 가장 옳은 방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게를 좀 더 나아지게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전에 비해서 확연하게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참 신기한 건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았는데도 아직 반도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공간을 임대할 때 공간이 작다고 느꼈는데 이 공간을 채우는 데에만 해도 1년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손님들이 책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오래오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