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알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이야기
우리 가게 주변은 오피스 상권과 애매한 주말상권 때문인지 몰라도 카페가 정말 많다.
유명 베이글카페와 빵집부터 웬만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다 들어와 있다.
심지어 근처에 코엑스와 트레이더스가 생기면서 삼성역처럼 자본을 움직이는 대기업 브랜드들이 많이 들어왔다. 여기까진 괜찮다. 서울 어딜 가도 이 정도의 포화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절망적인 건 이곳은 홍대나 성수처럼 핫플레이스가 아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 말은 무엇이냐, 그 적은 유동인구 내에서 어떻게든 손님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북카페를 오픈할 때 가지고 있던 상권을 보는 눈과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그때의 나는 무슨 용기가 있어서 오피스상권에 북카페를 만들었을까...?
지금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그때의 그 무모함이 없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거라고 본다.
아무튼 점점 과열되는 지역시장 분위기에 맞추어 나도 변화를 모색할 때가 왔다.
오랜만에 지역시장을 넘어 한국 북카페 시장 전반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픈 초기에만 해도 비슷한 콘셉트의 카페가 많이 없었는데 2년 차에 접어들고 나니 눈에 띄게 많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웃기지만 개인적으로 가게 인테리어나 메뉴구성을 벤치마킹하는 가게도 생긴 것 같다.
한국에 독서붐이 확실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관련 이벤트도, 서점도, 북카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현상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카테고리 내 경쟁 브랜드는 매우 유사한 고객층에 의해 판매된다는 장점으로 시장규모가 커질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심리를 품을 수 있다. 반면에 그 카테고리 내 브랜드 안에서 소비자 마음속에 있는 순위가 아래로 밀릴수록 브랜드는 잊힐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 높은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해서도 안된다. '미슐랭도 질린다'는 말이 있듯 대중은 쉽게 흥분하고 이내 차갑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전제는 맞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늘어나도 시장의 크기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 사업이 시장규모가 크고, 잠재고객이 많고, 이윤이 많이 남는다면 대기업에 이미 많은 자리를 내줘야 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속한 시장의 규모는 너무나도 작기에,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이윤을 남기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그러면 나의 시선은 한국 전체로 높아져야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북카페 중 혹은 책을 체험할 수 있는 북카페 중 벤의 서재는 대중의 인식 속에 어떻게 각인이 되어있는가, 어떻게 각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했다.
'입지'라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가게를 번화가로 옮기거나 더 넓은 공간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브랜드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주말에는 어디에나 사람이 많다. 주말에는 편의점도 장사가 잘된다. 때문에 주말에 가게가 잘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완전한 오피스상권을 제외하고 주말에 장사가 잘 안 되면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건 평일이다. 평일에 장사가 잘 되려면 지역 유동인구를 넘어서 더 멀리 있는 곳에서도 찾아올만한 내부 요인이 있어야 한다. 과연 내 브랜드가 번화가로 옮긴다고 해서 그 쟁쟁한 브랜드들 안에서 평일에 손님을 끌어올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아직은 내부요인을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내부요인을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인문학책에서 찾았다.
내 인생 최고의 브랜딩, 마케팅 책을 꼽자면 바이런 샤프의 '브랜딩의 과학'이지만, 이 못지않게 좋았던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이다.
사피엔스에 나오는 '상상 속의 질서'라는 개념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항상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상상 속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나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상상 속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수백만명의 낯선 사람에게 나와 협력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상상 속의 질서는 내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질서가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권력이나 영향력이 없는 개인에 불과한 사람이 내 브랜드를 좋다고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대중성이 없는 경우 더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의 크기가 작으면 잠재고객까지 설득해야 한다. 시간은 무한하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나의 돈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많은 브랜드가 없어지는 이유도, 버티면서 설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신념과 개성을 유지한 채 버티면서 꾸준히 설득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야만 한다.
내부요인을 올리면서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고민은 '무엇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안 되는가?'이다.
브랜드가 성장하고 망하는 단계에서 소비자가 '변했네'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주던 경험적 요소의 핵심이 수익을 위해 사라졌을 때로 보인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머릿속의 '상상 속의 질서'를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우니 댓글과 블로그글을 모두 살펴보았다. 나는 별도로 블로그나 댓글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리뷰는 모두 소비자의 진짜 언어로만 쓰여있어서 허위 글이 없는 게 좋다.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푹신한 소파, 시간제한이 없어 편하게 독서 가능, 읽을 책이 많음, 필기구와 종이가 있어서 좋음, 이용권에 음식이 나와서 좋음, 음주 독서 할 수 있어서 좋다, 마들렌이 맛있음'정도였던 것 같다.
위 5가지 이유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야 할 브랜드의 핵심 가치이다.
내가 만약 단순히 회전율과 객단가를 위해 저기서 하나라도 없애는 순간 가게가 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사실 푹신한 소파를 제외하면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멀리오셔서 돌아가시는 손님이 많아 25년 12월 말부터 주말은 3부제로 운영중이다.)
'그다음은 무엇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가?'였다.
위에서 제시된 5가지 중 시간제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올릴 수 있는 가치라서 가장 어려운 '푹신한 소파'를 늘리기로 했다. 가게 운영 초창기에는 내가 좋아하던 딱딱한 책상과 의자가 더 많았는데, 1차 구조개선 때 좌석을 줄이면서 4석만 남겨두었다가 2차 구조개선 때 모두 없애고 푹신한 회전의자로 교체했다. 그러나 푹신한 회전의자는 앞에 탁자에 음식을 두고 책을 읽기에는 불편한 구조였다. 다른 의자나 소파를 찾아보았지만 지금 구조로는 도저히 만족할만한 좌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 가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딥그린 소파를 모두 놓기로 결심하고 가게 구조를 모두 뜯어고치기로 했다.
사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다칠까 봐 엄두를 못 내던 전기작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전기작업을 하면 책장구조를 변경시켜서 입구를 좁히고 내부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주방구조도 조정하기로 했다. 이전과 또 달라지는 건 2인석을 만들기로 했다. 커플들이 떨어져서 불편해 보이는걸 눈으로 많이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은 브랜드, 같은 소파가 2인석이 있어서 인터넷 서칭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카페에 찾아가 여자친구와 같이 앉아보고 크기가 충분하다는 걸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오늘의 집 3D렌더링을 통해 구조를 먼저 만들어보고, 가능성을 본 다음 실행으로 옮겼다.
소파를 구매하면서 탁자와 조명, 방석까지 모두 구매하다 보니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하지만 가게를 옮기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이기에 감내하기로 했다.
구조변경 예정일은 휴일인 수요일 하루. 거뜬히 할 줄 알았던 작업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생각보다 책장을 옮기고 주방구조를 바꾸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전기작업이었다. 배선을 내가 직접 설치한 게 아니라 건들지 않고, 레일조명의 끝부분을 연장해서 조명구조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작업이 밤까지 이어지다 보니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실수로 차단기를 안 내리고 레일 연결부를 맨손으로 결합하다 그만 감전이 되고 말았다.
순간 찌릿하는 느낌이 확 와서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 지르고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이래서 혼자안하려고 했던 건데 기적적으로 기절도 하지 않았고 화상도 입지 않았다.
그래도 몸상태를 확인할 길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해야 할 것이 산더미라 결국 목요일 가게는 하루 쉬고, 독서모임만 진행했다.
금요일, 토요일까지 일찍 출근해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출 수 있었고, 찾아오시는 고객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번 토요일은 유난히 커플손님이 많았다. 그땐 예약시스템을 수정하지 못했던 때라 평소와 동일하게 예약을 받았는데 커플손님들이 모두 2인석으로 이동하셔서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구조변경에 대한 게시물을 올렸을 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두에 말했듯 상상 속의 질서는 개인의 질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고객들의 상호주관적인 질서이다.
내가 만족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과 관찰을 바탕으로 한 가설을 세우고 계속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푹신푹신한 좌석을 위해 구조변경을 하고 나니 마치 큰 산을 넘은 것처럼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지만 뒤이어 변화시켜야 할 것들이 더더욱 큰 산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