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세대주 오영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아이에게 왜 이사를 하는지 설명했다.
“우리가 사는 집의 주인이 따로 있어. 그런데 그 주인이 다른 사람한테 집을 팔았거든. 그래서 새로 주인이 된 사람이 이 집으로 이사를 오기로 했어. 그래서 이사를 가는 거야.”
아이는 말했다.
“와~ 대박 치사하네.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팔아?”
계약 기간만큼만 살고 나가는 것인데도 왠지 쫓겨나는 기분이 들어, 나도 아이와 비슷한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치사하게….
하지만 내가 살던 그 집을 매수한 사람도 나름 사정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2년에 한 번씩 열몇 번의 이사를 한 후 인생 처음으로 집을 사서 살게 된 사람일 수도 있다. 집을 판 사람 또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딸이나 아들의 사업이 잘못돼 빚더미에 앉은 걸 모른 척할 수 없어 집을 팔아 목돈을 마련해준 걸 수도 있고, 대출금을 갚다 힘에 부쳐서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부동산 투자에 귀재들이라 나름의 이익을 노리고 집을 사고팔았을 수도 있다. 그 이유를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저 자산에 맞춰 적당한 집을 구해 이사를 할 수밖에.
「세대주 오영선」은 흔한 이야기다. 제목대로 오영선 씨가 세대주가 되는 이야기.
옛말에 세 명이 모이면 그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지금은 세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부동산 이야기를 한다. 살고 싶은 집과 사고 싶은 집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많다.
나? 할많하않!
이 책에서 작가는 부동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참된 가치를 찾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얼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고 부추기지도 않는다. 등장인물 각각의 사정에 따라 집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들이 처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이야기한다.
영선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하나씩 보여준다. 영선이 멜론 스트리밍 이용권을 해지하는 건 대표적인 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대인 관계를 거의 맺지 않는 영선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조차 포기해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래야 될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섣불리 답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우리 모두는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다르고 남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도 제각각이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집을 산 사람도, 집을 못 산 사람도 모두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선과 희진의 만남은 그 불안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안타깝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상황이다.
등장인물들은 이런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휴 카페’를 찾아간다. 그들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도, 어딘가에는 따뜻한 공간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가끔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와서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노란 불빛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하고 크게 한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누군가는 남아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아파트를 포기하고 휴카페의 주인이 되어 누군가를 기다릴 용기는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