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총리의 남편]
여성이 총리가 되고, 남편이 온 마음을 다해 아내를 지지한다고? 총리가 소비세를 인상하고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개혁안을 줄줄이 내놓는데 국민들의 지지가 뜨겁다고?
허, 참, 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할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문득 내 뺨을 칠 뻔했다. ‘왜? 그러면 안 돼? 현실이 하도 ♥랄맞으니 소설에서조차 용납이 안 되는 거야?’라고 자문하면서.
그래도 현실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가 있는데 소설의 이야기가 비약으로 느껴지는 게 꼭 내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핑계를 대면서.
증세도 좋고, 복지도 좋다, 여성이 총리가 된 경우는 몇몇 국가에서 실제로 있는 일이니 그렇다고 치자. 배경이 일본이라면 얘기는 좀 다르겠지만.
정말 비현실적이었던 건, 책의 제목처럼 총리의 남편이라는 사람이다.
소설에서 린코(총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어요.”
로맨스 소설이면 얼마든지 있을 법한 존재다. 그런데 정치판에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내의 곁에서 조용히, 집중력을 잃지 않고 머무는 남편 말이다. 새를 관찰하는 조류학자여서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 남자는 총리의 남편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아침에 아내의 정신을 맑게 해 줄 허브티를 타 주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내를 조용히 기다려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 입네’ 하며 나서서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내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게 총리의 남편으로서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역할은 소설의 마지막에 나온다. 그건 비밀.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의 마음을 되짚어보자.
소설에서조차 용납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편협함이 현실과 지어낸 이야기 사이에 경계를 짓는 건 아닐까. 능력이 있다면 여성도 얼마든지 총리가 될 수 있고, 남편의 내조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미혼모도 대통령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출산 휴가 3개월 후에 다시 업무에 복귀해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살다 보면 잘 안 되는 일이 있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있다. 다만, 그 앞에 여성이어서라는 말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자여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 여자여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소설가의 희망과 의지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를 현실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총리의 남편은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처럼 말이다.
*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내 남편 욕하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