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 논문, 양식이라도 있나요?

by 브로콜리

박사과정 2년 차 1학기가 끝난 여름 방학이었다. 힘든 한 학기 코스웍(course work)이 끝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풀타임 학생들은 방학 때면 다들 본인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나는 파트타임이라 방학이 되면 딱히 연구나 실험에 대한 압박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안 써주고 안 쪼아주면 결국 졸업이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험실에 매주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그렇게 실험실에 매주 간다고 딱히 진척되는 건 없었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다짐했다.

‘최소 5년 안에… 빨리 졸업해야지.’

주위에 파트타임으로 졸업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나는 졸업한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다짐을 했다.


‘함 보자… 세편을 써야지 졸업이 된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한편도 안 써봤으니 지금부터 슬슬 써봐야지. 지금이 2년 차 1학기니 끝났으니… 2학기 때는 논문을 한편 써야 할거 같은데…’

혼자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권 박사님께 함 여쭤봐야겠다.’

실험실에 연구교수 권 박사님께 이것저것 여쭤봤다.

“논문 쓸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 쓰면 되지… 뭐 쓸 건데? 쓸게 있나? 근데 먼저 쓸 거를 교수님께 승인을 받아야지.”

‘아! 교수님께 승인을 받아야 하는구나!…’

혼자 대충 적어 투고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졸업 여부를 결정하시는 지도교수님께서 내가 쓴 논문이 저널에 투고할 수준인지를 먼저 확인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승인을 해주셔야 투고라도 해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교신저자의 역할이다.

자세한 프로세스는 최근에 졸업한 박사도 취업을 나가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일단 함 써봐야겠다.’


나는 회사에서 그동안 복합소재와 관련된 주제로 정부 프로젝트를 했었다.

석사 때 했었던 부분을 복합소재 쪽으로 적용해서 논문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여러 정황상 복합소재 쪽이 신소재로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는 주제인 거 같았다. 정부출연연구소, 대학교 등 많은 연구기관 박사님들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다니고 있었다. 자연스레 관련 분야 주요 연구 내용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둘째,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주제나 방법론을 익혀 연구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파트타임 학생의 특성상 마음이 급했으므로, 최대한 내가 익숙한 분야의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석적인 연구-정리-논문 순서보다는, 당장 SCI 논문을 쓰는 ‘방법론’ 자체를 터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로 확장하자. 이왕이면 지금 있는 데이터로 논문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과제를 하며 이날을 위해 많은 데이터를 일부러 잘 저장해 두었었다. 실험을 하면서도 항상 나중에 논문 써야지 하면서 조건별로 실험을 했었고 데이터를 정리해 두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될 거 같은데... 근데 무슨 내용으로 쓰지?’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할 생각보단 논문 작성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문득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다. ‘니가 생각하는 주제 논문 최근 3년 이내 걸로 5편 정도 찾아라!’

‘그래. 먼저 논문을 찾아보자.’

내가 관심 가는 키워드로 Google scholar에서 많은 논문을 검색해서 저장해 뒀다. 논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파일을 저장해 둔 행위만으로도 내가 뭐라도 열심히 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논문 하나씩 대충 그림들을 훑어보면서 무슨 내용인지 추측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개 논문을 봤다. 평소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부분과 매우 유사한 내용으로 실험 논문이 작성된 게 있었다.

‘오! 이 내용이, 이게 논문이 있네.’

그 논문을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실험하고 데이터 분석을 이렇게 했구나, 그래프를 좀 특이하게 나타냈네. 있어 보이는군...’

훗날 이 논문 저자는 1년에 다섯 개 이상 SCI 논문을 찍어내는 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초보자 눈에도 잘 쓴 논문과 유명한 저자 논문은 구분되나 보다. 나 같은 초보가 우연히 골라 벤치마킹한 논문의 저자가 알고 보니 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자 중 한 명이었다니…


‘음. 나도 이렇게 하면 적을 수 있겠는데?’

'근데 어디에 적어야 되지? 따로 양식이 있나?'

저널 논문 작성을 해보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랐다.

‘이럴 땐 지인 찬스를 써야 한다.’

졸업하신 선배 중 논문을 많이 쓰셨다고 소문난 타 대학 교수님께 염치 불고하고 연락을 드렸다. 지도교수님께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하기 어려웠다.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분들에게 질문하는 게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은근 졸업에 도움이 될 만한 팁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 교수님, 저 000 연구원 김 xx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웬일이세요? 학위과정 하신다면서요? 우리 교수님 만만치 않으신데 왜 거기서 하셨어요? 지금이라도 변경해요. 흐흐. 지금까지 파트타임으로 졸업한 학생 없어요. 아시죠?”

“아! 변경이요? 그게 지금 변경하는 건 좀 아닌 거 같고, 하는데 까지 해보려고요.”

지도교수님의 애제자이신 이 교수님은 지도교수님 스타일을 잘 아셔서 나에게 심각하게 조언을 해주셨다. 하지만 어디 지도교수 변경이 쉬운가. 애써 침착하며 질문을 드렸다.


“네, 다름이 아니고 제가 SCI 논문을 적고 싶은데요. 양식이나 이런 게 있는가 해서요.”

나는 양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질문을 드렸다.

“논문 양식이요? SCI는 따로 양식은 없어요. 그런 양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용만 좋으면 되죠 뭐.”

예상치 못한 짧은 대답에 당황했다. 뭐라도 얻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논문 그림이나 표 같은 것들도 중요하단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아! 그렇군요. 그럼 논문 그림은 품질을 얼마나 좋게 해야 하는가요? 따로 쓰시는 툴이 있으신가요?”

“그림이요? 그림 잘 보이게 선명하게 그리면 되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내용이 중요해요. 그림 품질이 안 좋거나 이상해도 내용만 좋으면 그림이야 나중에 수정하면 되니 일단 적어요.”


‘이런 말이 안 통하는군...’

난 좌절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통화가 끝났다.

‘아니 박사들은 왜 이리 꽉 막혀서 융통성이 없는 거야. 뭐라도 팁을 주면 되지.’

나는 혼자 툴툴대었지만 사실 그분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시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일단 적어보자.’

그렇게 난 다른 논문들을 참고 삼아 최대한 비슷한 구조와 흐름으로 워드 프로그램으로 아무 양식 없이 원고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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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사생을 위한 첫 논문 작성 팁

1. 벤치마킹 논문 찾기

• 최근 3년 이내 5편

• 내 연구와 유사한 주제

• 잘 쓴 논문 1편은 정독

2. 데이터 준비

• 기존 데이터 최대한 활용

•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

• 추가 실험은 나중에

3. 양식 걱정 NO

• 내용이 99%

• 리뷰어가 잘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 높게

• Accept 후 수정해도 됨

4. 교신저자 승인 필수

• 지도교수 승인 없이 투고 불가

• 미리 연구 방향 상의

• 정기적 보고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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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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