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식탁에서 시작된 논문

SCI 논문 원고를 작성하다.

by 브로콜리

논문을 투고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논문 주제를 명확히 정하지 못했다. 방학 동안 주말마다 주방 식탁에 앉아 논문과 씨름했다. 그런 나를 보며, 6살 딸은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듯 계속 들여다봤다. 나는 그럴 때마다 딸을 무릎에 앉히고 "아빠 지금 논문 쓰고 있어. 재미있지?"라고 설명해 주었다. 딸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 잠깐 흥미를 보이다가 이내 거실로 가버리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딸이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딸이 내심 섭섭하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딸을 안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딸은 ‘아빠는 원래 집에 오면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SCI 논문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어딘가 어설펐고,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긴 게 아닐까?", "그림도 열심히 그렸지만 뭔가 퀄리티가 낮아 보이는데..."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스스로 작성하고도 자신이 없었고,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 하면 되나?", "누군가 봐줬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들었다. 혼자서는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어떻게 수정 보완을 해야 할지 피드백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회사의 친한 박사님들께 검토를 요청하기로 했다. 온전히 혼자 작성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가 조금 부끄러웠지만 피드백을 많이 받아보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성 박사님, 저 학위 과정 중이라 논문을 한 편 써봤는데요. 검토 한번 부탁드립니다." 학구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 평소에도 존경하던 성 박사님. 그런 성 박사님께 부탁하면 분명 최선을 다해 봐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성 박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논문 작성에도 감이 필요해요. 논문을 꾸준히 써야 감각이 유지되거든요. 저는 논문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돼서요. 아마 최근까지 논문을 계속 써온 분들이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겁니다."

‘논문 작성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게 성 박사님 의견이었다.


성 박사님의 '논문 감각' 이야기에 문득 석사 과정 때 기억이 떠올랐다. 연구실의 졸업생이었던 한 박사님이 주말마다 실험실에 와서 논문을 작성하셨다. 대기업 연구소의 부장님이었는데, 교수로 이직을 준비하는 듯했다. 선배가 오자 실험실 후배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책상을 정리해 드렸다. 하지만 부장님은 오랜만에 논문을 쓰려니 잘 안 된다고 하셨고, 결국 몇 주 만에 포기하셨다. (덕분에 후배들은 실험실에서 조금 더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렇다. 부장님도 논문 작성 감각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대학원생이라면 시간을 들여 감각을 되살릴 수 있지만, 대기업 연구원이 주말에만 시간을 내어 논문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부족한 데이터가 보이고, 추가 실험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직장인은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수행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하다.

나는 성 박사님과 정 박사님께 논문 검토를 요청했다. 두 분은 난감해하면서도 여러 가지 코멘트를 주셨다.




성 박사님은

"사실 내용은 제가 봐도 제 전공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림을 이렇게 저렇게 배치하면 좋겠고, 그래프는 좀 더 가독성이 높아야 할 것 같네요."


정 박사님은 젊은 시절 7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하신 베테랑이었다. 은퇴를 앞둔 연구소의 대선배였고, 연구보고서와 계획서를 검토할 때마다 혹독한 피드백을 주는 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 박사님의 꼼꼼함을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좋았다. 그 꼼꼼함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드린 논문을 빽빽이 검토해 주시며, 마치 살아 있는 AI처럼 피드백을 주셨다.

"지금은 오래돼서 영어도 잘 안 되고, 분야도 달라서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논문 곳곳에 잔뜩 빨간 줄을 그어 주셨다.

"논문 작성 순서가 조금 이상합니다. 초록, 서론, 방법론, 결과 및 토의,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작성된 논문은 방법론이 여기저기 섞여 있어요. 구조를 다시 정리해야겠네요."

정 박사님의 조언은 지금도 큰 도움이 된다.

논문에는 기본적인 구조가 있다. 시대가 변해도 논문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초보자다. 논문 작성에는 룰이 있다. 굳이 벗어나려 하지 말자. 있는 룰을 따르자!"


그렇게 나는 논문 챕터 별 제목을

1. Abstract, 2. Introduction, 3. Method, 4. Results and Discussion, 5. Conclusion

으로 변경하고, 기존 내용을 여기에 맞게 재구성했다. 또한 2.1, 2.2와 같은 소제목을 활용해 내용을 정리했다.




논문의 구조와 그림을 정리한 후, 지도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방학인데 웬일이고? 잘 지내나?"

"네, 교수님. 다름이 아니라 논문을 한 편 작성해 보았습니다. 검토를 요청드리려고요."

"…"

교수님은 잠시 당황하신 듯했다.

여태껏 시키지도 않은 논문을 스스로 작성해 가져온 학생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파트타임 대학원생이 이런 요청을 한 것은 더욱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어, 그래. 보내 봐라. 내한테만 보내지 말고 이 박사한테도 같이 보내라."

교수님은 연구교수인 이 박사님께도 함께 보내라고 하셨다. 아마 이 박사님이 내 논문을 검토하도록 하실 생각이셨던 거 같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영어로 쓴 걸 보내야 할까요? 한글로 쓴 걸 보내야 할까요?"

당시 나는 이런 황당한 질문을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 교수님도 영어 논문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걸까?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영어로 보내야지!"

교수님은 어이 없다는 듯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보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난 공들여 작성한 논문을 교수님께 메일로 전달하고 검토를 요청드렸다.

그 후 며칠을 초조하게 지도교수님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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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첫 논문, 이렇게 준비하세요

1. 검토 요청하기

• 친한 박사님 2-3분

• 전공 다르더라도 OK

• 구조와 흐름 위주로 피드백


2. 논문 구조 지키기

• 기본 5단계 구조 엄수

• 초보자는 변형 금지

• 소제목 활용 (2.1, 2.2...)


3. 지도교수 보고

• 완성도 70% 이상 시점

• 메일 + 전화 follow-up

• 영어 원고 필수


4. 가족의 이해 구하기

• 주말 시간 확보

• 응원이 큰 힘

• 과정을 함께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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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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