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대기업에 근무했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채로 입사하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 당시에는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끝나고 앞날이 창창할 줄 알았다.
당시 무슨 근자감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신입사원 교육 중 인사팀 부장님과 면담에서 나는 연구개발을 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내 패기에 놀랐는지 나를 연구개발본부에 배치시켜 주셨다.
연구개발본부에 배치된 동기 중 학사 졸업생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부서에 배치되고 내 사수로 그분이 지정되면서 그분을 만났다. 내 사수였던 그분은 연구소에서 유능하고 점잔하다 소문 난 차장님이었다.
당시 내 나이 이십 대 후반, 그분 나이 사십 대 중반쯤이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같았던 난 사수에게 업무뿐 아니라 많은 부분을 배웠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마냥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가끔 대학 동기들을 만나도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게 내가 유일했으므로 어깨에 힘도 많이 들어갔다.
그렇게 1년 정도 근무를 하고 나니 점점 버거워졌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사수였지만 워라밸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고, 한창 전성기로 주가를 달리던 사수와 업무를 하기는 버거웠다.
첫 직장이라 어떻게 일하는 게 맞는 건지 뭐가 부당한 건지도 모른 채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지쳐가고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생각이 들면 그분은 그런 생각이 안 들게끔 많은 일거리를 던져주었다.
평일에는 퇴근시간이 7시였지만, 대부분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정도까지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주말에도 토요일 일요일 없이 그분에게 불려 나가 일을 했던 것 같다.
연장근무, 주말근무 등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었고 월급이 다였다.
하지만 사수는 “프로는 원래 다 그런 거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프로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난 그게 맞나 보다 생각했고 나를 녹여내고 있었다.
그렇게 근무하던 어느 날부턴가 일주일에 며칠씩 두통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두통약을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에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이 들어 병원에서 MRI 같은 것을 찍고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뇌 건강은 정상이니 문제없어 보이는데, 아마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다고 스트레스 관리를 하라고 하셨다.
뇌에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스트레스 때문이라 하니 오히려 안심했다.
그렇게 근무하던 어느 날 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고 그때는 입원을 했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오시더니 지금 체온이 39도가 넘는데 아셨냐고 나에게 물었다. 당연히 또 두통 문제인 줄 알았는데 고열이란 이야기에 정말 황당했고 해열제를 받아 퇴원했다.
그때 점점 내가 타들어가고 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하루는 그분께서 일요일 근무 거리를 만들어서 나보고 9시까지 나오라고 통보하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너무 무리했던 난 지쳐서 늦잠을 잤고 일요일 9시가 아닌 10시쯤 회사에 겨우 도착했던 것 같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니 사수는 먼저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날 보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저 옆에서 서성이며 필요한 부분을 내가 알아서 도와줬다. 그래도 날 없는 사람 취급을 했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다고 이곳저곳 병원을 다니신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듣게 되었다. 그래도 아들이 있는데 편찮으신 아버지께서 혼자서 병원에 다니는 게 마음에 걸려 연차를 내고 아버지 병원을 몇 번 같이 다녔다. 당시 연차라는 제도는 있었지만 사무직 직원들 연차는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진되고 보상도 없는 시스템이었고(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던 현장 직원은 사용하지 않은 연차를 전부 보상해 줌) 연차를 사용하는 건 뭔가 죄를 짓는 느낌이 들던 때였다. 난 그렇게 몇 번 연차를 사용했다.
당시 팀장으로 진급 한 사수가 날 부르더니 왜 연차를 쓰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병원에 같이 갔다 왔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이틀 정도 연차를 더 쓰니 사수가 다시 나를 불러서 물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언제 낫는 거냐?"
",..."
황당한 물음에 난 할말을 잃었다.
그러자 다시 몇번을 물었다.
"언제 낫냐고?"
지금 생각하면 화가 나서 욕을 퍼부어도 모자란 상황이었지만 당시 엄청난 세뇌로 내가 잘못한 줄 알고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아버지가 언제 쾌차하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가 입사 후 4년 차 되던 때였다.
그 뒤로도 팀장으로 진급한 사수는 앞뒤 가리지 않고 폭군처럼 팀원들과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도저히 우리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업무 계획을 세워서 연구소장님께 추진 의지를 불태워 칭찬을 받고 팀원들에게 공식적으로 9시 전에는 퇴근하지 말라고 했다.
여러 프로젝트며 돌발성 업무를 다 하나하나 진두지휘하며 챙겨 직원들을 달달 볶았다. A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급하니 빨리 진행하자고 하고, 다시 B라는 프로젝트는 왜 안 했냐고 몰아세우고, 갑자기 C라는 돌발성 업무로 출근한 나보고 갑자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출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 바쁘다고 몰아세우던 A, B 등 모든 일들은 도데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마치 내가 그 사람 도구가 된 느낌이었다.
부사수였으므로 다른 팀원들보다 더 그분 업무에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물리적 한계로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업무를 마치 내가 잘못해서 문제가 있는 것 마냥 만들었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어느새 입사 5년 차를 넘어가고 있었고 연구개발보다는 팀장이 하나하나 만들어 놓은 업무 계획을 쳐내기 바빴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팀장 업무를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구개발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히 외치던 신입사원은 입사 5년 차가 되니 이건 연구개발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이렇지" 항상 궁금해하던 난 이것저것 항상 사수와 주위 분들에게 여쭤봤지만 그 대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궁금한 부분을 해결하고자 뭔가 해보려 시도를 하면 그게 못 마땅했는지 자기가 시키는 데로만 하라고 닦달했었다.
그러면서 점점 몸은 피폐해져 갔고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는지, 회사 업무와 나를 분리하는 법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자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론적 방법은 이미 망가져 버린 내 심리 상태에 적용하기 힘들었다.
'이건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고 점점 몸이 망가져 갈 때 와이프에게 처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당시 신혼이었는데 와이프는 이런 나를 몹시 가엾게 여기며 살뜰히도 챙겼던 것 같다. 같이 회사에 그분 욕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 줬고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와이프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와이프에게도 하나 철칙이 있었다.
"자기야 나 너무 힘들어서 회사 못 다닐 것 같아. 어떡하지?"
"이직 준비해서 갈 곳이 정해지면 관둬."
"관두고 이직을 알아보면 안 될까?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냐."
나는 그렇게 투정을 부렸지만 와이프는 완강했다.
"일단 자기 포트폴리오를 한번 적어보고 이직 준비를 해봐!"
포트폴리오가 뭔지도 모르던 난 완강한 와이프로 인해서 처음으로 내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봤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는 그야말로 신입이라서 자기소개서만 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근무한 지 몇 년이 흘렀고 다시 어디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나이도 있었다.
파워포인트로 이것저것 좋은 양식을 찾아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봤다. 이쁘고 멋진 양식이 많았다.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샘플 포트폴리오는 너무 멋졌고 나는 얼른 그런 양식을 받아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봤다.
하지만 그렇게 멋지고 예쁜 포트폴리오 양식에도 내 이력을 넣으니 너무 허전하고 초라한 포트폴리오로 변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유일한 이력은 "~~ 대학교 졸업", "~~ 기업 입사-근무 중" 이게 다였다.
경력직이지만 정량적으로 날 나타낼 수 있는 이력이 전무하단 걸 알게 되었다.
대기업 입사 5년차 난 여전히 ‘백지’ 같은 상태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