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포트폴리오 그 후 - 현명한 퇴사

by 브로콜리

입사 5년 차.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시기였다.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밖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대화 내용은 항상 같았다.

"이번에 무슨 부서가 없어진대."

"누가 어디로 발령 난대."

스몰토크나 농담 따먹기 같은 한가로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마음의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입사원 때부터 끊임없이 그런 류의 소문에 시달렸던 것 같다. 신입이라 전혀 스트레스받지 않고 열심히만 해도 모자랄 판에도 왠지 불안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디로 발령이 날까 봐 걱정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조금씩 위기는 찾아오고 있었지만 난 몰랐다.

4년 차 난 인생 첫 진급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리 진급.

두통과 고열도 구분 못하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정신없이 일했다. 다들 내 승진을 미리 축하해주고 있었다.

'나는 되겠지.'

연말 인사발령이 떴다.

그룹웨어 공지창을 클릭했다. 승진자, 퇴사자 등 인사발령이 몇 페이지씩 이어졌다.

백여 명이 넘는 승진자 명단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내 이름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시 처음부터 찾아봤다. 역시 없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날 알아주지 않는구나.'


그렇게 씁쓸하게 승진 탈락을 하고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승진자 축하 회식까지 참석하고 퇴근을 해야 했다. 누가 봐도 조금 이상한 승진이었던지 예정에도 없던 우수사원상을 만들어 나에게 억지로 안겨줬다.


난 아이러니하게도 연말 우수직원상을 받고 승진을 탈락하는 이상한 대리 진급 누락자가 되었다.


와이프 조언으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본 나는 텅 빈 내 이력을 보고 허무했다.

경력직이지만 정량적으로 날 나타낼 수 있는 이력이 전무했다.

충격이었다.


'5년을 이렇게 보낸 거야?'


그때 목격한 장면이 있다.

직급 체계가 개편되면서 많은 수석연구원님들이 책임연구원이 되었다. 당시 연구원부터 수석연구원까지 4~5단계는 되는 직급 체계가 사라졌다. 직급은 오로지 연구원, 책임연구원밖에 안 남았다.


부장(수석연구원)급이었던 분들이 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다시 현장에서 실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게는 작은 삼촌뻘 되시는 부장님들이 설계와 프로젝트 실무를 직접 하시며 여기저기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걸 두 눈으로 봤다. 조카뻘 되는 직원들과 얼굴을 붉히거나, 비난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쓰럽고 가여웠다.

자식들은 아마 중고등학생일 것이고, 대기업 연봉에 맞춰 모든 게 세팅되어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더러워서 때려치우고 싶다', '힘에 부쳐서 때려치우고 싶다' 생각하시겠지만, 처자식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너무 한눈에 보였다.

내가 힘든 상황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저게 어쩌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뭉그러진 마음을 부여잡았다.

사실 정확히 이직을 해야겠다기보단, 허무하게 텅 빈 포트폴리오를 보니 내 실적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량적인 포트폴리오에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채우자.'

포트폴리오를 적어보고 다른 사람들 샘플을 보다 보니 뭘 채워야 할지 조금 느낌이 왔다.

그렇게 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열심히 고민해서 특허를 쓰기 시작했다. 특허를 쓰기 위해 업무에서도 항상 뭔가 새로운 부분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연구원으로서 실적을 채우고 싶었다. 지금도 연구소라는 조직에 있었지만, 사실 회사 연구소는 이름만 연구소지 회사에서 제작하는 제품을 처음 만들어보는 집단에 불과했다. 설계하고 조립하고, 그게 다였다.


'대학원을 가야겠다.'

학부 졸업 시 대학원 진학도 진지하게 고려했었지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집안사정' 상 진학하지 못했다. 지금은 더 힘든 시기지만 그런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고, 학위를 받아야만 내 이력서가 좀 더 채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내에서 대학원 진학 프로그램이 있었고 매년 1~2명씩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래, 저걸 지원해야겠다.'


사수에게 말했다.

팀장이었던 사수의 대답은?

"지금 바쁘니 그런 거 할 시간 없다. 가지 마라."

팀장의 강력한 반대에 나는 '대학원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내 인생을 책임져줄까? 왜 내 미래를 본인이 결정하지?'


두통과 고열도 구분 못할 정도로 새벽, 주말 등을 도구처럼 부리더니 진급도 누락시키고, 아버지 병환으로 연차 몇 번 썼다고 그렇게 매정하게 구는 사람인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고민 고민 끝에 사수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위 상무님을 찾아갔다.


"이만저만해서 대학원을 꼭 가고 싶습니다. 지원해 주십시오. XXX 팀장은 가지 말라고 하는데 꼭 가고 싶습니다."


상무님은 웃으며 말했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 공부하고 싶다는데 우리한테 도움 되는 거 아닌가. 지원해 봐!"

훗날 당시 상무님을 은퇴 후 만났다.


상무님께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리니 상무님은 다 기억이 나신다며, 사실 XXX 팀장도 반대하고 인사에서도 약간 말이 있었지만 본인이 다 커버를 치며 날 밀어줬다고 한다.

"네가 그렇게 지원해서 열심히 하면 회사 전문성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고, 그걸 본 다른 직원들도 분명 도움이 될 건데 왜 그러시냐?"라고 하셨단다.

훗날 내가 퇴사를 하자 조금 곤란하시기도 했지만, 상무님께서는 "XXX이 저렇게 나가서 경력직으로 우리 회사도 알릴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하고 어떻게 좋은 관계로 다시 파트너를 맺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셨단다.

시대를 앞서 가셨던 분 같다.


그렇게 난 회사 지원을 받아서 파트타임으로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매주 공식적으로 시간을 할애받아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팀장 지시를 듣지 않았으므로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 사수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 같다.

팀장은 상무님과 이야기를 하고 와서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노골적으로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몇 년을 노골적 무시와 차별을 받으며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날 선 팀장의 언행과 노골적 괴롭힘은 당시 팀원들도 다 느끼고 있었다. 그런 괴롭힘을 보면서 다들 점잖기로 소문난 팀장, 내 사수의 본모습을 봤던 것 같다. 그런 괴롭힘이 본인들이 아닌 나에게 집중되니 한편으로 안심했겠지만, 저 화살이 나에게 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수와 난 멀어졌고, 주변 동료들도 사수의 본모습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포트폴리오를 채우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