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모르면 함부로 비난하지 마라.
"이건 순 엉터리야."
학회 포스터 발표장에서 들린 소리다.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내 포스터를 보며 누군가가 한참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연구 조건도 없고, 내용도 이러쿵저러쿵”
내 포스터를 훑어보고는 엉터리라고 했다.
사실 조건 등은 보안상 문제로 밝히지 않은 거였다. 이 사람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저자인지도 모른 채 계속 떠들었다.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 포스터 저자인데 뭐가 엉터리인가요?"
"아... 그게... 조건도 제대로 없고, 내용도 대충 적혀 있고 연구가 배울 게 없네요."
나는 포스터를 다시 보며 말했다.
"전문가 분들이 다 알아보실 줄 알고 조건은 다 지웠습니다. 하하."
웃으며 얼버무렸다. 굳이 저런 태도 사람과 토론하고 싶지 않았다.
'참 하수네. 뭘 평가를 하려고 하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순간, 그의 네임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 교수'
'큰 과제나 연구하는 빵구 좀 낀다는 양반은 내가 다 아는데... 듣보전(듣도 보도 못한 전문가)이네. 크게 도움 안 될 양반이 웬 개소리야!'
짧은 시간에 내 뇌는 순간 그렇게 서열을 나누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잠깐, 나도 지금 똑같이 하고 있잖아?'
얼굴이 붉어졌다.
저 교수나 날 함부로 비난한 것과, 내가 그 교수를 속으로 비난한 것. 뭐가 다른가.
참 나도 속물이고, 강약약강 보수적 공학계 고인물이구나.
"이 동네 밀면 제대로 하는 집이 없어서 밀면 새로 게시합니다."
얼마 전 동네 국밥집에 현수막이 걸렸다.
의아해서 건너편을 봤다. 어릴 적부터 있던, 우리 부모님도 자주 가시는 30년 넘은 밀면 전문점이 있다.
그런데 그 집 메뉴판을 보니 최근에 '국밥'이 추가되어 있었다.
'아...'
밀면집이 메뉴에 국밥을 추가하니 맞대응으로 국밥집은 "밀면 못하는 집"이라고 밀면집을 디스 한 거다. 밀면집 국밥 메뉴가 먼저 추가되었는지 국밥집 현수막이 먼저 걸렸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학회 듣보전 양반들이나 동네 식당이나 똑같네.
"○○사람 한방에 제압하는 법"
"○○사람 손절하는 법"
"얕보이지 않는 법"
요즘 유튜브를 보면 이런 영상들이 인기다.
모두 갈등에 관한 내용이다.
누굴 그렇게 이겨야 되는지 모르겠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아나 보다. 이런 갈등 콘텐츠가 다른 주제보다 조회수가 잘 나온다는 걸.
TV도 마찬가지다. 이혼, 재혼, 연애 등 관계 갈등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누군가 싸우고, 갈등하고, 비난하는 걸 보며 재미를 느낀다.
비난과 갈등이 일상이 되고, 콘텐츠가 되고, 돈이 되는 세상.
학회장에서 나를 비난한 교수.
밀면집을 비난한 국밥집.
갈등을 소비하는 우리.
그리고 그 교수를 속으로 '듣보전'이라 비난한 나.
자세히 모르면 함부로 비난하지 말자. 맥락도 파악하지 않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건 엉터리야"라고 말하지는 말자. 쉬운 말이지만, 나부터 못 지킨다. 대부분 내가 자세히 안다고 생각하고 비난한다.
우리 모두 비난과 갈등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비난 세상을 만드는 데 나도 한몫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웃으며 상냥한 사람이 비난하고 화내고 무게 잡는 사람보다 고수다.
웃으며 상냥한 게 훨씬 어렵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장기적으로 가장 성공하는 사람은 '기버(Giver)'라고. 단기적으로는 '테이커(Taker)'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긴 시간이 지나면 베푸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했다.
자기계발 스테디셀러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판과 비난은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자신을 정당화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반면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결국 긴 시간 뒤 경쟁에서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