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프릴리미너리 - 졸업 준비

by 브로콜리

"자네도 이제 슬슬 졸업 준비해야지."

그동안 어떻게 졸업 시기를 교수님께 말씀드릴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되나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지도교수님께서 먼저 졸업 준비를 해보라고 하신다.

난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다.

'야호!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겠구나.'

혼자 생각이 교수님께도 들렸는지.

"지금 세 번째 논문 준비하고 있으니 이번에 프릴리미너리(Preliminary, 예비발표)를 하고 세 번째 논문 출판 시점에 최종 디펜스(학위논문 발표)를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하신다.

하지만 세 번째 논문 출판이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

세 번째 논문을 위한 연구가 지체를 거듭하고 있었기에 약간 겁나기도 했다. 하지만 졸업 준비, 프릴리미너리 등의 단어만으로도 이미 7부 능선을 넘은 느낌이 들기 충분했다.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박사학위 졸업이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심사위원 섭외


나는 교수님 마음이 변하기 전 빨리 뭔가를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교수님. 그럼 심사위원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요?"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은 보통 5명이다. 2명까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할 수 있고, 나머지는 학과 내 교수님으로 구성해야 한다.

학과 내 교수님들 전공이 조금씩 다르고, 특히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기에는 세부 전공이 백 퍼센트 일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학 교수님들은 이미 많은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해보셨다. 세부 전공이 조금 다르더라도 연구의 흐름과 가치 정도는 충분히 평가하실 수 있으시다.

교수님은 심사위원 4명을 추천해 주셨다. 1명은 지도교수님 제자이시고, 나머지 3분은 학과 교수님으로서 내 연구 주제를 평가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이었다.

그렇게 난 지도교수님이 평가 가능한 일정을 확인하고 나머지 네 분께 연락을 드려 일정 조율을 시작했다.

먼저 각 교수님들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해서 심사를 맡아주십사 말씀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 교수님 실험실에 박사과정 OOO입니다."

나의 전화를 대부분 반갑게 받아주셨다. 평소 그렇게 말을 친절하고 예쁘게 못하는 나였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할 수 있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아마 이런 하나하나가 다 학생 신분으로서 배움의 단계인 거 같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박사학위를 준비하는데 교수님께서 심사위원으로 추천해 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XXX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셨으면 제가 일정만 맞으면 해야죠."

그렇게 난 네 분 교수님을 전화통화를 통해 다 섭외했다. 그리고 각 교수님들께 e-mail을 돌려서 일정 조율을 완료했다.

그렇게 난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프릴리미너리, 즉 박사논문 예비 발표를 하게 되었다.


예비 발표 준비


예비발표를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았다.

비록 예비발표지만 박사학위 논문의 70~80%는 완성을 해야 했다. 논문뿐 아니라 발표자료도 준비를 해야 했다. 발표를 할 장소도 섭외를 해야 했고 발표 시 심사위원들 책상에 놓을 심사서, 서명록, 다과 등을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하나하나 이런 부분을 직접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빠른 논문 작성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난 그때부터 매일 밤 세 번째 논문 준비와 프릴리미너리 준비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퇴근 후 한정된 시간에 그런 부분을 준비해야 했기에 조금 힘에 부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언가에 취한 듯 즐겁게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왜 SCI 논문 3편이 필요한가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최소 3편 이상 SCI 논문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시던 교수님 말씀을 이 시기에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 논문도 결국 서론부터 결론까지 총 5~6개 챕터가 필요했다. 그중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최소 3개 챕터는 이미 출판한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이 필요하다.

만약 출판한 논문이 없다면 이 최소 3개 챕터를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며 적어야 한다. 이건 사실상 검증되지 않은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부분이고 심사위원들에게 신뢰를 받기도 힘들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나머지 챕터가 이미 본인이 출판한 연구들을 재구성해서 작성하면 큰 부담도 없고 심사위원도 크게 태클을 걸 게 없다. 이미 SCI 논문 투고, 출판 과정에서 더 엄격한 피어 리뷰가 완료된 연구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이미 논문 두 편을 출판했으므로 챕터 2개 정도는 쉽게 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론을 추가로 작성하고 향후 연구 계획 부분은 논문에서 비워두고 프릴리미너리를 위한 논문과 발표자료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논문을 출판해 둔 게 일을 절반으로 줄여주었다.


박카스를 들고


뭔가에 홀린 듯 예비발표 논문을 작성하고 인쇄해서 심사위원분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뵈었다.

심사위원분들을 처음 찾아뵙는데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검은 비닐봉지에 박카스를 한 박스씩 넣고 찾아뵈었다.

그렇게 심사위원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예비논문을 전달드렸다.

훗날 들은 이야기로는 나처럼 심사위원분들을 찾아뵐 때 박카스를 사 들고 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은 풀타임 학생들로 나이도 어리고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니 인사를 한다거나 요청을 하러 가는 일들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필드에서 업무를 하며 다양한 업체를 찾아뵌 경험이 있었던 난 그때 박카스 한 박스 사 들고 가냐 안 가냐에 따라서 상대방 표정 변화를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다소 올드한 방식이긴 했다.

하지만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

이런 예의가 심사위원분들께서 모진 심사를 하지 못하게 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과의 힘


정신없이 예비발표를 준비하며 와이프에게 다과 준비를 부탁했다.

와이프는 꼼꼼했다. 유명한 제과점에서 쿠키를 주문하고, 마트에서 커피, 물, 에너지 음료를 샀다. 그리고 각 심사위원분들 별로 소분해서 준비해 주었다.

꼼꼼한 와이프 덕에 다과 준비는 거의 완벽하게 했던 거 같다.

특히 쿠키가 맛있었는지 지도교수님은 내가 발표하는 동안 연신 쿠키를 맛있게 드셨다.

아무래도 단 음식은 사람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심사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드디어 예비심사 당일


심사위원 구성은 A, B, C, D 심사위원과 지도교수님 총 5명이다.

심사장 책상 정리와 발표 준비, 다과 세팅 등 사소한 일들은 실험실 동생들이 도와줘서 금방 끝낼 수 있었다.

발표는 수없이 연습을 했기에 자신 있었다. 그러나 질의응답은 예측할 수 없기에 걱정스러웠다.

심사위원 A는 지도교수님 제자로 나와도 친해서 큰 걱정이 없었다. 나머지 심사위원 B, C, D는 다들 학과 교수님이면서 분야가 유사하신 교수님들이었다.

특히 B 교수님은 현재 내가 하는 연구를 실험실에서 진행하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발표를 마쳤다.


'휴, 잘 끝났다.'

그런데 역시나 B 교수님이 손을 드신다.

"그건 XXX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요?"

"난 그건 OO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내가 올해 초에 낸 논문에 그런 부분을 언급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주로 본인 의견을 기반으로 한 질문이었다. 객관적이지 않아서 대답하기 곤란했다.

최대한 아는 한에서 설명을 드렸다.


통과


B교수님이 조금 까다로웠지만 프릴리미너리는 무난히 끝났다.

심사위원분들은 "앞으로 잘해 보세요"라고 하셨다.

'통과했다!'

프릴리미너리 후 박사학위 디펜스는 한두 학기 후에 있을 거다.

하지만 난 다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 다음 학기에 무조건 졸업한다.'


"그래, ○○○야 고생했다! 얼른 논문 준비하는 거 마무리하자"

지도교수님은 날 격려해 주시며 다시 채찍질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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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릴리미너리 완벽 가이드

【 3개월 전 】

심사위원 섭외

일정 조율

논문 작성 시작 (70~80%)

【 1개월 전 】

발표자료 제작

심사위원께 논문 전달

예의 갖추기 (인사 방문)

【 2주 전 】

발표 연습 (10회 이상)

예상 질문 리스트 작성

다과 준비

【 1주 전 】

심사장 세팅 계획

심사서, 서명록 등 필요 문서 준비

최종 리허설

【 전날 】

일찍 취침

발표 자료 최종 점검

마음 다잡기

【 당일 】

1시간 전 도착

심사장 세팅

다과 배치

심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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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