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논문 심사 당일 아침 날벼락

by 브로콜리

세 번째 논문을 투고한 후 박사 디펜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표로 했던 세 번째 논문이 출판되기를 기대하며 논문을 투고했고, 동시에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프릴리미너리 때 연락을 드렸던 심사위원분들께 다시 연락을 드리고 일정을 조율했다. 모든 게 동시에 진행되었다.


박사학위 논문 작성

박사학위 논문 작성도 시작했다. 무엇보다 박사학위 논문이기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세 편의 SCI 논문을 취합했고 이를 아우르는 서론과 결론, 초록을 작성해야 했다. 작성하다 보니 그 양이 광범위해지고 길어졌다.

지도교수님은 박사 졸업을 위한 SCI 논문 출판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박사학위 논문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도 있으셨다. 첫째, 영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SCI 논문을 여러 편 출판했다면 이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영어를 잘하지 않았지만 한 편 한 편 영어로 논문을 출판하다 보니 실제 박사학위 논문에 이 내용을 정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출판된 논문 없이 박사학위 논문 전체를 영어로 작성하라고 하면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둘째, 박사학위 논문인 만큼 그 질과 양이 그에 걸맞아야 한다였다. 이미 출판된 논문을 바탕으로 하므로 챕터가 5~6개 정도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렇게 하면 논문 페이지는 150~200페이지가 된다. 논문의 내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위 기간 동안 출판한 논문이 연결성이 있어야 했다. 다행히도 나는 연구 내용이 학위 기간 동안 꾸준히 연결되어 있어 연결하기 수월했다.

셋째, 사전에 읽고 검토한 참조논문이 200개 이상은 되어야 한다였다. 사실 이 부분은 연구 질과 독창성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논문을 읽어볼 수 있었고 '세상에 정말 많은 연구자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강조하셨던 사전 논문 출판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에 들어간 내용들은 이미 peer review 과정이 완료된 내용으로 심사위원들도 큰 이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였다. 이렇게 작성된 논문은 아마도 지도교수님이 동료 교수에게 '내 제자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해 줘'라고 요청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박사 심사 준비를 위해 나는 시간의 압박 속에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할 시간도 없어 정말 뭐가 뭐인지 모를 정도로 준비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고 급박한 순간에 초인적인 능력이 나온다는 걸 이때 느꼈다. 몇 주 동안 퇴근 후 노트북을 켜고 적고 또 적었다. 그와 동시에 발표자료 준비까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건 이미 출판된 논문으로 인해서 퀄리티 있는 그림, 표 등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디펜스 당일

드디어 박사학위논문 심사 날. 다섯 분의 심사위원을 모시고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장 세팅, 다과 준비, 발표 준비 등은 프릴리미너리에서 했던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준비했다. 심사위원분들 입맛과 성향을 최대한 고려해서 다과와 발표자료, 정리자료를 준비했다. 발표 준비도 충분히 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 제외 네 분의 심사위원 중 두 분은 내 연구를 좋게 봐주셨고 어떻게 수정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코멘트로 도움을 주시려고 하셨다. 하지만 나와 거의 동일한 분야를 연구하신 B 교수님은 또 질문 폭격을 시작하셨다. "XXX는 왜 그런 건가요? 내가 해보니까 그렇지 않던데 그걸 그렇게 설명하는 게 맞는 건가요?" "올 초에 내가 출판한 논문이 있어요. 거기서 이걸 OOO로 정의했어요. 근데 지금 여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아닌 거 같아요." 등등 나랑 디스커션을 즐기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라는 중요한 순간에 심사위원분과 즐겁게 디스커션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특히 아직 출판되지 않고 심사 중인 세 번째 논문 내용에 대한 반박이 너무 많으셨다. 피어 리뷰가 진행 중인 걸 아시는지 연신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나도 정말 이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질의응답에서 의견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기에는 자칫 심사위원분과 설전이 오갈 수도 있을 거 같고, 심사위원 심기를 건드릴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에 최대한 돌려서 대답하고자 했고 정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좀 더 확인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약 50여 분의 발표와 질의응답이 끝났다. "자, 그럼 ooo 학생은 잠깐 나가 있으세요. 심사위원들끼리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발표장을 나왔고 너무 긴장된 나머지 실험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복도를 서성이며 제발 통과되길 하며 기도를 했다. 잠깐 발표장 문에 귀를 대고 심사위원분들 의견을 들어봤다. 생각보다 많은 토론을 하고 계셨고 정확히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B 교수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아마 큰 반대를 하시는 느낌이었다.

2차 심사?

10여 분 뒤 복도 벤치에 앉아 있으니 발표장 문이 열리고 지도교수님이 나를 부르신다. 그리고 심사위원분들은 자리를 떠나시고 계셨다. "어, 그래 OOO아 고생했다. 1차 심사 의견을 반영해서 수정하고 다시 2차 심사를 하기로 했다. 그거 준비하자." 이건 무슨 상황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한 번에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패스도 실패도 아닌 2차 심사 준비라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박사학위 논문 심사는 최대 6회까지 가능한데 난 이건 형식적인 거라 생각했다. 첫 번째로 모든 게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 평가를 심사위원들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하는 거였다. 첫 디펜스에서는 준비한 졸업을 위한 서명 서류 등에 결국 도장을 받지 못했다. 긍정적인 건 아마 실패였다면 첫 번째 심사에서 디펜스 실패라고 했을 텐데 다행히 실패는 아니었다는 거다. 2차로 또 보자고 하는 건 실패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2차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준비했다.


날벼락

두 번째 박사 논문 디펜스를 발표하는 당일 아침.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세 번째 투고했던 논문 심사 결과였다. "I am afraid that..." 세 번째 논문이 리젝되었다. 박사 논문 디펜스를 하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지도교수님 졸업 요건은 SCI 논문 최소 3편인데 현재 Accept된 논문은 2편뿐이다.

'어떡하지...' 심사위원분들은 이미 오시는 중이고, 발표장은 이미 예약되어 있다. 2차 디펜스는 3시간 후다. 그리고 이 리젝 메일은 교신저자인 지도교수님께도 이미 전달되었을 것이다. 일단 오늘 발표부터 끝내고 그다음에 생각하자. 떨리는 손으로 발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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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디펜스 준비, 이것만은 기억하자

박사학위 논문의 3대 기준 (참고: 교수님마다 기준이 다르니 참고만 하시길)
첫째, 영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이미 SCI 논문을 출판했다면 가능하지만, 출판 논문 없이 전체를 영어로 작성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질과 양이 걸맞아야 한다. 챕터 5~6개, 총 150~200페이지, 내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셋째, 참조논문이 200개 이상 되어야 한다. 이는 연구의 독창성과 깊이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디펜스 중 생존 전략
심사위원과의 설전은 피하라. 졸업이 걸려있다. 반대 의견이 있어도 최대한 돌려서 대답하고, "그 부분 좀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교수님 의견 반영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현명하다. 심사위원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졸업은 멀어진다.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
일단 당장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하라. 나쁜 소식은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다면 조절하라. 패닉에 빠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한 발 한 발, 오늘은 오늘 할 일만 집중하라.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 기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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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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