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박사학위 심사

by 브로콜리

세 번째 투고한 논문이 리젝되었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박사학위 2차 심사장으로 향했다. 1차 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심사장을 빌리고 다과, 논문 인쇄물 등을 준비했다. 프릴리미너리, 1차 심사 때까지 인쇄물은 모두 인쇄소에 의뢰해서 준비했다. 1차 심사 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수백 장 논문을 인쇄했다. 하지만 심사가 한 번에 끝나지 않으니 2차 심사를 위해 수정된 논문 수백 장을 또 인쇄소에 의뢰했다. 1차 때 인쇄한 인쇄물은 모두 이면지가 되어버렸다.

'이거 인쇄비용도 만만치 않네. 지금에 와서 내가 인쇄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인쇄를 위한 지출만 수십만 원에 달했고 그 돈도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위해서라면 그깟 인쇄비가 몇백이 들면 어떠냐'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준비했다.


2차 심사, 또다시 진땀

2차 심사도 1차 때와 동일하게 거의 50분간 진행되었다. 논문 투고 때와 마찬가지로 Review Comments Response 문서를 만들어서 인쇄해서 준비했다. 심사위원들이 1차 때와 비교해서 2차 논문에서는 어느 부분이 수정되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였다. 준비한 모든 내용을 발표하고 1차 때 나왔던 의견에 대한 수정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도 했다.

질의응답에서는 또 B 교수님께서 끝없는 질의를 하셨다. 이제 이골이 나서 순순히 받아들였다. 반박할 내용은 반박했지만 도대체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게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B 교수님 질의가 정말 어려웠던 부분은 가령 이런 식이었다.

"제가 직접 이렇게 해봤는데 OOO 학생이 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던데요?"

내가 했을 때는 나왔는데 교수님이 했을 때는 그 결과가 그게 아니더란다. 할 말이 없었다. B 교수님은 정말 뭔가가 궁금하시고 나와 함께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듯했다.

'제가 다음에 그 부분도 추가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추가로 필요하신 부분은 또 말씀해 주시면 같이 연구해 보시죠.'

라는 식으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조금 질의가 부드러워지기도 한 것 같았다. 진땀 흘리며 질의응답을 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나가나 생각하고 있었다.


A 교수님의 불의의 일격

그때 갑자기 별말씀 없으시던 A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저는 이 분야 연구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A 교수님은 지도교수님과 같은 학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교수님이시다. 젊고 유능하여 촉망받으시는 교수님이시다. 하지만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전공은 아니신 분이었다.

"OOO 학생 논문 내용과 발표를 잘 읽어봤는데요? 사실 이 부분에 연구로서 어떤 가치가 있고 새로운 발견이 뭔지가 명확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갑자기 이건 무슨 말씀이신가? 2차 심사 때까지 별말씀 없으시다가 갑자기 연구의 근본을 물으시다니.'

난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1차 심사부터 2차 심사까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불의의 일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의에 난 반포기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게…"

지치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가만히 서 있으니 A 교수님은 오히려 매우 당황하셨다.

"그러니까 논문의 신규성과 가치에 대해서 좀 듣고 싶습니다."

지쳐서 할 말을 잃고 서 있자 교수님께서 오히려 다독이며 대답을 유도하셨다. 아마 별 질의를 안 하셔서 그냥 기본적인 질문을 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매우 힘들어하며 대답을 못 하니 오히려 본인이 당황하신 거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난 힘을 내서 다시 대답했다.

내가 다시 힘을 내서 대답하니 A 교수님은 그제야 안심하신 듯 말씀하신다.

"네, 천천히 대답해 보세요."

"그게, 제 논문의 신규성과 가치는 OOO이고 ~~"

그렇게 마무리하고 나는 2차 박사논문 심사 발표를 마쳤다.

심사위원장께서 말씀하신다.

"그럼 OOO 학생은 잠시 나가 계시겠어요? 심사위원들끼리 심사를 하겠습니다."

난 그렇게 또 발표장을 나와서 복도를 서성였다.


복도에서의 또 다른 기다림

그리고 또 혼자 발표장 문에 귀를 대고 심사위원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려 애썼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지도교수님 목소리도 들리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신 지도교수님의 제자 타 학교 교수님 목소리도 들렸다. 대충 용은 나를 열심히 디펜스 해주고 계신 느낌이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장분 목소리도 들렸다.

"전 논문의 학술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차 때와는 달리 2차에서는 나름 긍정적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복도를 서성이고 있으니 실험실 후배가 날 부른다.

"선배님 교수님이 발표장으로 오시랍니다."

"어? 그래.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난 발표장으로 향했다. 발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사위원분들은 모두 자리를 뜨고 계셨다.


"3차 심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신다.

"OOO아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3차 심사 한 번 더 하고 마무리하자."

"네? 3차 심사요?"

지도교수님은 3차 심사를 또 하기로 했다고 하신다. 난 놀란 표정으로 지도교수님을 봤다.

'아니 이번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또 한다고? 이러다 진짜 졸업 못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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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멀뚱히 서 있었다. 교수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말씀하신다.

"그래. 근데 3차 때는 이렇게 발표는 생략하고 내 방(지도교수님 실험실)에 모여서 논문 수정본 확인하자. 그때는 도장 찍을 거니 준비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정말 끝이 없구나. 박사학위 받기 정말 어렵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실패는 아니니 끝까지 버티자.'

그렇게 혼자 다시 한번 나를 독려하고 마음을 다잡고 서 있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래. 논문 투고한 거는 결과는 나왔니?"

교수님은 아직 리젝 메일을 확인 못 하신 것 같다.

'이 일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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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답변 태도

B 교수님의 질문은 까다로웠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다른 결과가 나오던데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중엔 깨달았다. 교수님은 나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하신 거였다. "추가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함께 연구해 보시죠"라고 답하자 교수님도 부드러워지셨다. 심사위원을 적으로 만들지 말고 협력자로 만들어라.


지쳐도 침묵하지 말 것

A 교수님의 "연구 가치가 뭔가요?" 질문에 나는 지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교수님이 오히려 당황하셨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답했다. 아무리 지쳐도 침묵은 답이 아니다. 천천히라도 답하라.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3차, 4차도 각오하기

나는 1차에 끝날 줄 알았다. 2차 통보받고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3차 통보받는 순간 '끝이 없구나'를 깨달았다. 최대 6회까지 가능하다. '실패'가 아닌 '보류'라면 계속 버텨야 한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게 물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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