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박사라고 불러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게 된 날

by 브로콜리

프릴리미너리, 1차, 2차 심사.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하던 날들. 복도에서 발표장 문에 귀를 대고 심사위원들 목소리를 몰래 듣던 시간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3차 심사를 준비했다.

인쇄소를 통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논문을 인쇄했다.

'도대체 몇 번째야. 이미 수천 장을 인쇄했겠다.' 궁시렁거리며 인쇄를 했다. 인쇄소 아저씨께서는 뭔 논문을 이렇게 매번 인쇄하냐며 의아해하신다. 그래도 평소 업무상 잘 아시던 사장님이라 비용은 계속 외상으로 걸어두고 있던 참이었다.

드디어 3차 심사날. 1시간 전 심사위원 분들께 모두 전화를 돌렸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OOO 교수님 실험실 박사과정 학생 OOO입니다. 잠시 후 OOO 교수님 실험실에서 논문 심사가 있어서 리마인드 차 연락드렸습니다."

친절하게 심사위원 분들께 안내를 드렸다.

"아! 저는 수업이 있어서 5~10분 정도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진행하고 계시면 가겠습니다."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B 교수님은 조금 늦으신단다.


약속된 시간에 교수님 방에 B 교수님을 제외한 심사위원분들이 모였다.

"B 교수님은 조금 늦으신다고 먼저 진행하라고 하십니다."

B 교수님 일정을 안내드리고 마지막 심사를 시작했다.

"2차 심사 때 지적해 주신 부분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Review Comments Response 문서를 심사위원분들께 설명드렸다.

"네, 잘 수정하셨죠? 그때 넣으라고 한 그림은 넣으셨죠?"

심사위원분들이 모두 만족하시고 분위기가 좋게 흘러갔다. 모든 설명을 마쳤다. 심사위원분들은 모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긴장 속에 기다리기만 했다.

3번의 심사, 논문 리젝과 리비전, 그리고 또 리비전. 모든 게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재료들 같았다.


지도교수님께서 천천히 말씀하신다.

"어, 그럼 이제 완료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심사위원장인 C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자, 그럼 심사위원 분들 모두 박사학위 논문 승인을 허락하시는 거죠?"

드디어 긴장의 순간. 모든 교수님들이 긍정의 눈빛을 보내신다.

"OOO 학생, 그럼 심사서류 가져오셨죠? 사인합시다."

"네, 여기 있습니다."

B 교수님을 제외한 4분의 교수님이 박사논문 심사서류에 모두 서명을 해주셨다. 그러고 있는 순간 B 교수님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신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B 교수님이 늦게 들어오시자 지도교수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B 교수 이제 끝났어요. 여기 서명하세요."

B 교수님은 한 발 늦었다는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시며 아무 말씀도 못하신 채 서명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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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박사, 고생 많았어요."

'아! 드디어 끝났구나. 만세!'

그렇게 프릴리미너리부터 3차 심사까지 4번의 박사논문 심사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 기뻐 별 이상한 이야기를 다했던 것 같다.

지도교수님은 또 한 명의 박사 제자를 배출하셔서 뿌듯하셨는지 인자한 웃음을 지으신다.

"네, 교수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김박사 고생 많았다. 우리 랩실에서 4년 만에 졸업한 건 D 교수(심사위원) 말고 니가 처음이다."

그제야 알았다. 파트타임 박사과정생인 나는 실험실 역사상 풀타임 졸업생을 포함해서 가장 빨리 졸업한 학생이었다. 지도교수님께서 파트타임 학생인 내가 빨리 연구소뿐 아니라 학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신 게 그제야 느껴졌다.


심사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집에서 오매불망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와이프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보, 나 드디어 심사 통과했어."

"정말? 와~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와이프 목소리에 기쁨과 안도감이 묻어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신이 없었으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야. 정말 고마워."

기업에서 퇴사를 고민하며 시작했던 석사 2년, 연구소 이직 후 많은 박사학위자들과 근무하며 생존을 위해 시작한 박사 4년. 와이프는 순전히 내 학위과정을 위해 6년을 내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내가 아니라 와이프가 고생해 줘서 졸업할 수 있었다.

석사 과정 때를 생각했다. 문장 한 줄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발표 때는 더듬거리다가 결국 중간에 말을 잃어버렸던 날들. 당시 나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그 순간 와이프가 한 발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하나하나 코칭해 줬다.

"이렇게 해봐. 이 부분 문장을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해 봐."

박사 과정은 더 힘들었다. 야근이 끝나고 집에 와도 논문 리비전을 위해 밤을 새웠다. 피곤함 때문에 지쳐 있는 나에게 와이프는 침묵으로 응원해 주었다. 공부 시간을 허락해 주고, 딸과 함께 소음을 줄이며,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따뜻한 차도 끓여주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진짜 박사를 만든 건, 와이프였다. 그 순간 나는 와이프에게 가장 고마웠다.


"그래, 김박사 마지막 논문은 어떡할 거냐?"

교수님은 리젝 된 3번째 논문에 대해서 물으신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수님을 만나 뵈러 가면 항상 논문이나 연구에 대해서 물으신다. 교수님들은 제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항상 궁금하신가 보다.

"네, 그게… 000 저널에 다시 한번 투고해 보겠습니다. 그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 논문이 괜찮다고 다음에는 자기들 저널에 논문을 투고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거기 impact factor가 많이 높은데 거기 되겠는가?"

논문이 리젝 되었지만 한 저널에서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그쪽 저널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기존 투고했던 저널보다 impact factor가 3배 정도 높은 저널이었다.

"그럼 그렇게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나는 세 번째 논문을 다시 기존보다 훨씬 높은 저널에 투고했다.


직장인 박사학위 취득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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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는 한 번이 아니다

1~2회 심사는 기본, 3~4회도 정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보다 "끝까지 버틴다"는 마음가짐

심사위원과 설전은 절대 금지 - 모두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기

가족의 지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직장 + 가정 + 학업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

와이프/남편/부모/자녀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말 것

졸업 후 그 은혜를 갚자

리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 저널의 거절이 다른 저널의 문을 연다

박사는 학위 취득 후가 진정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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