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수여식은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그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석사학위 수여식 때는 와이프와 같이 참석해서 너무 즐거웠었는데, 박사학위 수여식에는 와이프뿐만 아니라 딸도 같이 축하를 해주러 왔다. 박사 과정 시작 때 5살로 어린이집을 다녔던 딸은 어느새 훌쩍 자라 박사학위 수여식에는 초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훌쩍 커버린 딸은 어린이집 졸업식 말고 학교, 그것도 대학교에서 하는 졸업식장은 처음이었다. 한껏 고조된 졸업식장 분위기는 어린 딸아이를 기쁘게 만들었나 보다. 딸은 아빠의 학위복과 박사모를 신기해하며 같이 사진도 찍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었다.
졸업 후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명함도 교체하고 모든 프로필에 공학박사(Ph.D.)를 붙이는 작업을 했다. 괜히 점잔 뺀다고 명함을 천천히 수정하기도 싫었다. 얼른 모든 프로필을 다 수정하고 싶었다. 특히 외부 활동을 나갈 때에는 꼭 공학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행정 시스템상 명함 발급이 많이 늦어졌다. 마침 그때쯤 명함 업체 선정이 길어지면서 지연이 발생했던 거다. 외부에 출장을 가야 할 일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나는 조금 조급해졌다. 어쩔 수 없이 명함에 스티커를 붙였다. 손수 'Ph.D.'를 적어 넣고 다녔다. 누가 보면 우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다.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 그 말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박사학위가 없어 느꼈던 혼자만의 설움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다. '박사님'이라고 누군가 나를 부를 때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했던 어정쩡한 상황이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떳떳하게 "박사라고 불러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명함이 안 나오니 어쩌겠나. 자체적으로 그렇게 만들 수밖에. 한동안 그렇게 자체적으로 수정한 명함을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진짜 새로운 명함이 나왔을 때 너무 감개무량했다.
업무에 있어서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기획도 하고 바쁜 나날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박사 과정 기간처럼 무언가 한 가지 연구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고민할 대상이 없었다. 4년간 나를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오히려 중심을 잃은 것 같았다. 매일 밤 자려고 누우면 불안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자도 되나?' 박사 과정 때는 자면서도 논문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그 걱정조차 없어진 것이다. 논문을 쓰고 싶기도 하고 한 가지 연구를 깊게 파고들어 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졸업 후 한동안은 같은 팀 후배를 붙들고 열심히 토론을 시도했다. 그리고 논문을 같이 쓰자고 설득하여 열심히 논문도 썼다. 역시 아직 박사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이 좋았다. 논문 작성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시놉시스를 그려가며 짰다. 그리고 후배에게 공유하며 이렇게 해 보자고 후배를 설득했다. 후배는 내가 지휘하는 대로 따라와 줬고 우리는 매우 높은 저널에 성공적으로 논문을 게재했다. 이때 난 처음으로 교신저자로 논문을 투고했다. 같이 고생해 준 후배에게 1 저자를 양보했고 난 교신저자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후배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졸업 후 한동안 자체적으로 논문을 쓰고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명확한 목표가 없다 보니 그런지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졸업 후 첫 논문을 성공적으로 게재했지만 두 번째 논문은 리젝 되었고 추가 수정을 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내 신변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가 날 'O 박사님'이라고 불러줬다. 하지만 그 쾌감도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후 줄곧 석사 과정, 박사 과정을 하며 학위 과정과 자기개발을 동시에 해왔던 나였다. 자기개발이라고 해봐야 퇴근 후 하는 '전화영어' 정도가 다인 지금이다. 조금 당황스러운 나날이 지나가고 있다. 목표를 향해 달려온 4년. 그 목표를 이룬 지금,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아직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