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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마리 올챙이

by 브로콜리

매년 방학만 되면 난 외할머니 댁인 시골에서 1~2주 신나게 놀다 오곤 한다. 뜨거운 여름도 머리가 바짝 서는 추운 겨울도 내 황금 같은 방학을 막을 순 없다. 외할머니 댁 주위에는 작은 계곡과 저수지, 운동장 등 놀 게 천지다. 나랑 동갑인 외사촌도 있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천사 같은 외할머니만 계서서 더욱 천국이다. 난 그렇게 올해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야호 드디어 방학이다! 명남아! 떠나자.”

그렇게 올해 여름방학에도 난 할머니댁으로 떠날 생각에 들뜬다.

부산진역에서 외사촌 명남이와 함께 비둘기호 기차를 탄다.

“과자 좀 사물까?”

“오, 비쌀 거 같은데. ‘남이’ 니 돈 있나?”

“어, 있지. 기다리봐라.”

명남이가 산 과자를 먹으며 우리는 여름방학의 설렘과 기차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이렇게 어른들 없이 기차를 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명남이가 없으면 아마 나 혼자는 못할 거다. 명남이는 나와 동갑인데도 내가 아직 못 해본 경험을 많이 해봤나 보다. 혼자서도 척척 잘한다. 삼랑진역에서 내린 우리는 역전 오락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락을 한판씩 열심히 한 후 마을버스를 타러 간다. 마을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우린 할머니댁에 도착했다.

“할매, 우리 왔어요.”

“우리 똥강아지들 왔어?”

할머니는 짧은 파마머리에 몸빼 바지를 가슴까지 끌어당겨 입으셨다. 넓은 마당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계신다.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 아래 드넓은 마당에 서 계신 할머니가, 몇 개 빠진 이를 훤히 보이게 환하게 웃으시는데 마치 이 넓은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작은 거인 같다. 할머니 아궁이에는 가끔 폭발도 일어난다.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별걸 다 넣으시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고향이 충청도인가보다. 항상 충청도 사투리를 쓰신다. 나는 한번씩 ‘할머니는 충청도 보단 부산과 경상도에 더 오래 사신거 같은데?’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충청도 사투리는 너무 정겹다.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우리는 드디어 긴장을 푼다. 할머니가 너무 반갑지만, 오랜만에 뵙는 거라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그래, 어여 들어가서 밥 먹자!”

기차며 버스며 오는 길이 여간 쉽지 않았던지라,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다. 그렇게 넓은 방에서 잠이 든다.

그런데 창문 넘어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꾸웩~꾸웩”

소 울음 소리와 비슷한 매우 큰 울음 소리가 1초 간격으로 들린다. 할머니댁 뒤 놀이터 근처 작은 저수지에서 나는 소리다.

“남아, 이거 무슨 소리고?”

난 이상한 소리에 놀라 명남이에게 묻는다.

“이거? 개구리 소리 아니가. 윽쓰 크제? 황소개구리다. 요새 텔리비에 나오는 거 봤제? 크기가 거의 팔뚝만 하다.”

삼랑진에 오래 살아서 나보다 시골생활에 익숙한 명남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팔뚝?’

명남이의 이야기에 난 너무 놀랐다. TV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 소개는 많이 봤는데, 그게 여기까지 와있다니 놀랍다. 도대체 개구리가 얼마나 크면 울음소리가 이렇게 크단 말인가. 황소개구리 울음소리에 놀라 한동안 신경이 쓰였지만 내일 놀 생각에 들뜬 난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린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저수지 옆 놀이터로 나갔다. 우리가 왔단 소식에 할머니댁 동네 친구들이 벌써 놀이터로 나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과는 처음엔 조금 서먹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한바탕 놀고 나니 금세 다시 격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축구까지 끝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다.

“남아, 밥 무러 갔다 오자”

“어, 그래. 벌써 시간이 이래 됐네. 우리 밥 좀 먹고 올게. 너거도 밥 먹고 온나”

명남이와 난 다시 할머니 댁으로 점심을 먹으러 돌아가고 있었다.

“와. 점마들 축구 좀 늘었네. 예전에는 별로 못 하드만”

시골 친구들 변한 축구 실력에 조금 놀라서 내가 말했다.

“그래, 요새 학교에서 축구 많이 하는 갑드라”

“그렇구만. 우리랑 비슷하네. 어? 근데 저기 씨꺼먼거 뭐꼬?”

걸어가며 저수지를 문득 봤는데 저수지 한쪽 구석이 새까맣다. 마치 미역이 잔뜩 있는 듯 보인다.

“저거? 올챙이일걸?”

명남이가 말하면서 그쪽으로 걸어간다. 나도 따라 가본다.

"와! 저게 다 뭐꼬? 올챙이가?"

"어. 황소개구리 올챙이같다."

"이야 올챙이가 뭐 개구리만하네"

"맞제? 장난 아니다."

도시 뒷산에 올라가 무슨 올챙이인지 모를 올챙이를 보고 잡은 기억은 난다. 하지만 조그만 계곡물에 실같은 크기로 겨우 몇 마리 헤엄치던 올챙이였다. 지금 보는 올챙이는 도시의 조그만 계곡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저수지에 몇천 마리가 아니 몇만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크기도 내 손가락 한 마디보다 커 보인다.

올챙이를 넋 놓고 보던 나와 명남이는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함 잡아볼까?"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장난꾸러기 우리였다. 눈앞에 올챙이가 그렇게 많은데 그냥 넘길 우리가 아니었다. 명남이는 평소 오며가며 봤던 크게 관심 없는 올챙이였지만, 나로 인해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겼나 보다.

"어째 함 잡아보꼬?"

"두 손으로 푹 푸면 될 거 같은데?"

"함 해보자!"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저수지에 넣었다. 물속을 휘젓자 미끄덩한 감촉이 손에 닿았다. '잡았다!' 하지만 올챙이는 대부분 재빨리 빠져나가 버렸다. 몇 마리 잡히긴 했지만 저수지에 있는 수 천 마리를 다 잡고 싶었다. 정작 손바닥엔 몇 마리만 올라오니 성에 차지 않았다.

“소쿠리 같은 걸로 확 푸면 될 거 같은데?”

난 말했다. 그러자 명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할매한테 소쿠리 달라고 해서 퍼보자!"




우리 둘은 신나게 할머니 댁으로 간다. 그리고 마당에서 개밥을 주시던 할머니께 말했다.

"할매 소쿠리 하나만 주세요.”

“잉? 소쿠리는 뭐하게?”

“저수지에 올챙이 좀 잡을라고요. 윽쓰 많아요."

"이? 올챙이는 뭐하게? 씨잘데기 없는 짓 말고 언능 들어와"

그러면서 빨간 소쿠리를 마당 한 편에서 꺼내 주신다.

소쿠리를 들고 흥분한 우린 열심히 달려 다시 저수지로 도착했다.

신난 우리는 소쿠리를 저수지 올챙이 소굴에 푹 담군다.

'촤아~~' 소쿠리에 가득했던 물이 쫙 빠지면서 새까만 먼가가 소쿠리 안을 가득 채운다.

"함 들어봐라"

"헉! 뭐고 몇 백 마리는 되겠다."

수백 마리는 잡은 거 같다. 조금 징그럽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가져가서 키우자!"

“그래 가져가서 키우자.”

명남이도 맞장구친다.

사실 한 두 마리면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만, 새까만 올챙이가 수백 마리가 되니 조금 겁에 질린다. 시골아이들이 약하게 볼까봐 강하게 보이길 원했던 나로선 난감하다.

'이거 보기만 해도 좀 징그럽고 무서운데…….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함 가져가보자'

어쩔 수 없다. 잡은 이상 가져가서 키워야 된다. 하지만 시골아이 명남이도 말은 안하지만 조금 무서운가 보다. 둘은 조금은 징그러운 수백 마리 올챙이를 소쿠리에 담고 그대로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우린 올챙이를 퍼서 외할머니댁 마당 수돗가에 있는 세숫대야에 옮겨 담았다.

‘으~ 이 세숫대 나중에 사용 못하겠다.’ 난 혼자 생각했다.

올챙이를 보고 있는데, 너무 무섭다. 꿈틀거리는 까만 물결, 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부산 동네 뒷산에서 잡은 겨우 몇 마리 올챙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하~ 올챙이 함 키워보자"

"그...그래……."

우리 둘은 허세를 부렸지만 둘 다 이제 어떡하나 고민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아, 이거 재밌겠다. 그자?”

“어…….”

우리 둘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때 마침 할머니가 나오신다.

"이히~ 뭘그리 잡아쪄?"

"올챙이요~"

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라며 세숫대야 속을 들여다보신다.

"어메~ 뭘 이리 많이 잡아쪄? 새까마네 그냥“

"저기 뒤에 저수지가면 이런 올챙이가 수만 마리 있어요. 할매."

“이거 다 어떡할껴? 이걸 키운다고? 참말로 별 짓을 다 하네! 못 살아 그냥”

할머니가 소리를 빽 지르신다.

우린 ‘할머니 이제 어떡하죠?’ 하는 눈빛을 하곤 맘에도 없는 말을 한다.

"키... 키울 건데요...."

"문디 지랄한다. 쌔빠질놈들, 이걸 어떻게 다 키워?"

할머니는 소리를 빽 지르시고 어디론가 가신다.

난닝구를 입고 몸빼바지를 가슴까지 추켜올리신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신 걸까? 왠지 너무 믿음이 갔다. 할머니께서는 넓은 마당 개집 옆에 있는 울타리로 가신다.

‘저긴 닭들이 있는 곳인데?’

할머니께서는 울타리로 들어가시더니 큰 닭 몇 마리를 다리로 툭툭 치며 데리고 나오신다.

"꼬꼬댁~ 꼬꼬~~"

우린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저놈의 닭은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쭈뼛쭈뼛 서게 무서워……. '

"할머니 설마"

우리가 말릴 틈도 없이 할머니는 갑자기 올챙이가 든 세숫대야를 마당으로 휙 들어부었다.

까만 올챙이들이 마당 모래와 잔디 위로 쏟아졌다. 새까만 올챙이가 마당에서 펄떡인다.

"꼬꼬~~꼬끼요~"

닭들이 눈에 불을 켜고 올챙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든다. 닭들이 환장하고 올챙이를 쪼아 먹기 시작한다. 우린 그 장면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

"할매, 이거 닭들한테 줘도 되는 거에요?"

"그럼 주면 되지~걱정말어, 안죽어"

올챙이는 순식간에 닭들 모이가 되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키우기로 한 올챙이가 닭 모이가 되는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사실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닭들이 처리해주지 않았으면 우린 올챙이를 세숫대야에 넣어두고 안절부절 했을 거다. 닭들은 쉴 새 없이 올챙이를 쪼아댄다. 우린 그런 닭을 보다가 슬슬 걱정이 되었다. 닭들이 저러다 배 터지는 거 아닌가하고. 하지만 닭들은 순식간에 거의 모든 올챙이를 먹어치웠다.

그렇게 우린 본의 아니게 생태계 교란종 황소개구리 퇴치에 앞장섰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올챙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올챙이들이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개구리가 되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와악! 살려줘!"

"개굴개굴~~~!"

그런데 저 멀리, 몸빼를 입은 할머니와 닭 떼가 달려왔다.


"꼬꼬~~꼬끼요오오!"

"끼야아악!!"

눈을 떠보니,

나는 이불을 차버리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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