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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Aug 21. 2023

21 가죽가방과 에코백


 명주는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밝고 통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선재의 유일한 친구였던 모습 그대로였다.      


 “선재야! 너 완전 세련됐네~! 사실 너인줄 모를뻔 했어. 어떻게 이런데서 갑자기 만나? 너무 신기하다. 그치? 이리와서 잠깐 앉아봐. 진짜 너무 반갑다!”

 “그러게.”

 “말없는 건 똑같네? 하하하. 너도 반갑다는거, 나는 알아.”     


 선재는 빙긋이 웃으며 명주 앞에 앉았다.     


 “어떻게 된거야? 너 갑자기 없어지고 엄마랑 나랑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어디서 어떻게 산거야?”

 “돈 벌려고 갔어. 너랑 아줌마한테 미안해서.”

 “돈? 어디서?”

 “휴게소에서. 거기서 좋은 이모 만나서 공부도 하고, 대학도 가고 그랬어. 넌 여기 살아?”

 “아니. 나 아빠 만나러 온거야. 우리 아빠 나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거든.”

 “그러고 보니 아버님 얘기는 못 들은 것 같네.”

 “응. 아파서 가신거라 나랑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나저나 너무 반갑다!”

 “나도. 근데 명주야, 미안한데 나 오늘은 가봐야 해서 또 보자. 내 명함이야.”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엉? 너 의사됐어? 대박. 야, 이선재 진짜 출세했네~! 오, 이런 우연이 다 있어! 우리집에서 멀지 않아! 연락할게. 또 보자.”

 “그러게. 하하핫. 꼭 연락해! 나 너랑 아줌마한테 고마운게 많아.”     


 명주는 일어서는 선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의사가 되다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살짝 부럽기도 했지만 마치 명주 스스로가 의사가 된 듯 뿌듯함이 밀려왔다. 선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명주는 엄마도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텐데, 생각하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철컥. 삐리릿.     

 “엄마. 엄마, 나왔어.”

 “오셨어요?”

 “네, 선생님. 엄마 별일 없으셨어요?”

 “네. 낮잠도 주무시고, 식사도 제법 많이 하시고, 얌전히 계셨어요. 아빠한테는 잘 다녀왔어요?”

 “네. 밖에 엄청 추워요.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들어가볼께요.”

 “안녕히 가세요.”     


 명주는 화장을 곱게 하고 양산을 쓴 채 소파에 앉은 현정을 보았다. 엄마가 알아 들을까, 선재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얘기해보기로 한다.     

 “엄마, 선재 알아? 선재 기억나?”

 “전 괜찮아요. 그만 먹을래요.”

 “아니, 엄마. 안 먹어도 돼. 나 오늘 선재 만났어.”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     


 하루이틀이 아닌데도 명주는 또 눈물이 나려 했다. 엄마는 누구보다 정많고 총명했고, 명주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치매는 정말 잔인한 병이었다.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은 날,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엄마를 볼 때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자식조차 기억 못 하는 엄마가 한편 밉고 서운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가 밖에 혼자 돌아다니거나 누굴 때리거나 집안을 망가뜨리지 않아 돌봐드리기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현정은 아침에 일어나서는 곱게 화장을 하고, 하얀 블라우스와 긴 치마를 입고서, 연보라색 양산을 쓰고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식의 가슴에 대못이 박힌 줄도 모르고, 혼자서만 곱고 예쁘고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명주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명주도 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꽤나 큰 기업에서 팀장으로 열심히 일도 하고, 결혼도 했었다. 회사에서는 승진을 위해 외국 출장을 권유받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아이가 생겼고, 남편은 뱃속의 아이를 남겨둔 채 사고로 먼저 가버렸다. 명주는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전처럼 엄마와 함께 살았다. 반강제로 회사를 그만 두었고,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 앞 마트에서 채소를 포장하고, 바코드를 찍었다.     


 명주는 아까 받은 선재의 명함을 꺼내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명주는 전화번호를 저장한 후 문자를 작성했다.     


 [선재야, 만나서 반가웠어. 언제 병원에 한번 놀러갈게.]     


 명주는 이내 문자를 다시 지웠다. 명주가 보지 못한 선재의 인생에 대해 손이 아프도록 박수쳐주고 싶었다. 인생의 성공을 이루어낸 선재가 멋있었다. 내 친구라고, 이렇게 대단한 친구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망설여졌다. 선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까? 혹시 변한게 아닐까? 마트에서 일한다고 싫어하지는 않을까?    


 선재는 비싼 코트를 입고 질좋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명주는 추리닝에 센터에서 나눠준 에코백을 들고 있었다. 선재는 안정되고 평온한 표정이었다. 명주는 반가움 속에 불안과 우울함을 감추고 있었다. 선재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전문적으로 보였다. 명주는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애나 키우는 여자였다. 선재는 축하를 받는 입장이었다. 명주는 동정을 받을 입장이었다.     


 명주는 긴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식탁에 두고 쌓인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웠다.      

 “누구라고? 선재?”

 잠깐 정신이 돌아온 현정이 말을 했다.

 “데리고 와. 선재 나도 보고 싶다.”

 “엄마, 선재 기억나?”

 “언니 너무 예뻐요.”     


 명주는 끝내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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