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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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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Aug 07. 2023

20 두번째 인생

   

 매서운 추위가 며칠째인지 모른다. 지금도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선재는 엄마의 납골당 옆 카페 빈백에 홀로 앉아 창밖에 날리는 눈송이들과 뜨거운 바닐라라떼의 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선재는 피식 쓴웃음을 흘리며 커피를 홀짝인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민정쌤, 오늘 수고했어요. 미안하지만 병원 잘 정리해주시고 퇴근해주세요. 아, 내 방에 히터 꺼졌는지만 확인해줘요. 네, 고마워요. 내일 봐요.”     


 엄마의 기일이라서 병원에서 조금 일찍 나온 선재는 민정의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등학생이었던 선재는 새벽에 내리던 창밖의 눈을 보았었다. 엄마가 맞는 소리,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명주, 죽었다는 아빠, 사랑만 받아도 모자랐을 거지같은 어린 시절, 버려진 채 두려운 마음으로 휴게소 가던 길. 그 모든 것들이 선재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쳐 지나간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차라리 좀더 일찍 죽어버리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차가운 인생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눈 앞에 있던 큰 화분의 흙에 있던 작은 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버섯...... 너처럼 나도 살아냈어. 꿋꿋하게.’     




 선재는 다시 만난 엄마를 버리고 돌아온 후, 주연이 이모의 끈질긴 설득에 중학교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의 새 인생,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주연이 이모가 새로운 가족이 되어준 이상, 자신도 남들처럼 부모의 사랑 비슷한걸 누려보겠다 생각했다. 주연이 이모에 대한 미안함도 뒤로 미뤄놓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나중에 잘 되면 다 갚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4년 동안 얼굴에 로션 하나 바르지 않은 채 공부만 했다.      


 공부를 해본 적이 없던 선재는 오히려 백지같은 머릿속이 도움이 되었다. 읽고 쓰고 외우는 족족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머릿속에 집어 넣어졌다. 그러다보니 공부에 재미가 붙었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어 결국 의대에 합격하게 되었다. 비록 지방 국립대의 대기합격자로 운좋게 겨우 합격하긴 했지만 선재에게는 합격소식에 순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인생의 사건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그날처럼 하루 종일 울었으나 그것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졸업 즈음에 선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동기들처럼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인턴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면허만 취득 후 페이닥터 시절을 지나 가정의학과를 개원했다. 공부보다는 빨리 사회에 나와 주연이 이모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 날은 마지막으로 천식에 고혈압이 있던 환자의 진료를 보던 중이었다. 주연이 이모에게서 메시지가 왔고, 선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선재야, 성이...... 니 엄마 갔다.’     


 골초였던 미자는 폐암으로 입원을 해 있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미자를 누군가가 발견하고 병원에 데리고 왔고, 혈연관계인 주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미자는 주연에게는 이해하기 힘들고 미운 언니였지만, 차마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주연은 의사에게서 이미 폐암이 몸 전체에 퍼진 미자가 얼마 못 살 거라는 진단을 들었기에 남은 인생이라도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선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버린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워 면회 한 번 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앞둔 선재는 슬프다기보다 안타까웠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없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게 나 좀 봐주지...... 내가 자식인데 나 좀 봐주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때문에 살아보는 것도 좀 해보지...... 바보멍청이같이...... 나 좀 봐주지...... 엄마아빠 사랑없이도 잘된 나도 좀 봐주지......”     

     



 선재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 커피도 다 마셨고, 해도 점점 지는 중이었다. 눈발도 약간은 사그라든 것 같았다. 길이 미끄러워 집에 가려면 두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코트를 챙겨 입고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이 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좀 늦을 것 같아. 내일 봐. 어. 잘 만났어. 그래.”     

 전화를 끊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선재를 불렀다. 

 “선......선재니? 선재 맞아?”

 뒤를 돌아본 선재는 눈이 커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명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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