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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정벌레 Apr 07. 2021

이 세상엔 없는

다시 부를 수 없는 이름에게 띄우는 편지

선배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오래 전에요. 선배 이름이 나오고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게 왜 이렇게 이상했는지 몇 번을 되물었어요. 선배는 천년만년 걱정 없이, 아니 생각 없이 살 것 같았어요. 선배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보면서, 저런 걸 몰고다니면 제 명에 살겠어 생각했었는데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이유로 이 세상에 없다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네요. 



나는 선배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어요. 멋진 웃음도 좋았고, 이상한 농담도 그렇게 쿨해보였는지 몰라요. 웃을 때 보이던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도, 눌러쓰고 다니던 거지같은 모자도, 껄렁한 옷차림도요. 선배 때문에 수업을 신청했는데, 수업을 안나오는 양아치같은 모습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좋아했어요. 



선배의 모든 것이 알고 싶어 언젠가 선배가 하던 커뮤니티 활동을 추적했었어요. 선배가 어디엔가 이메일을 댓글로 적어놓은 탓이예요. 아이디 정말 구린 건 알죠? 선배가 적은 유치한 글들, 그리고 더 유치한 댓글들을 나는 모두 읽고 또 읽어봤어요. 진짜 깨는 것도 많았는데 난 그걸 보고도 선배를 계속 좋아할 수 밖에 없었어요. '병신같지만 멋있어'라고 생각하면서요.



아직도 그 이메일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서 얼마 전 다시 들어가 보았어요. 오래전에 내 짝사랑이 끝나고 난 다음부터는 보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선배가 남긴 댓글들을 보다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어요. 가지고 있는 걱정을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안 되어 보일 지 몰라도, 적어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하는 선배의 짜증날만큼 따뜻한 댓글 때문에요. 



선배는, 나한테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그 때에 나는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고 군대도 다녀온 선배를 아주아주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제 벌써 우리가 만났을 때의 선배의 나이를 훌쩍 넘었고, 이젠 선배가 죽은 나이쯤이 되었겠네요. 앞으로 내가 선배보다 더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상해요. 



선배에겐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을거고, 나한테 선배는 닿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좋으니깐 무어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 같이 울어라도 주고 싶은 사람이었을거예요. 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그 동안 연락할 일이 한 번도 없었고, 내 나이정도 되니 주변에 이제 없는 사람들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저 선배가 세상에 없는 게, 없는 게 선배라는 생각이 정말 이상해요. 



오늘은 조금 공허한 마음에 상담을 신청해서 다녀왔어요. 나는 선배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선배가 그리워서 슬픈 것도 아니예요. 그냥 설명할 수 없는 공허에 안절부절할 뿐이지만요.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는 죽은 게 아니라, 어디에선가 제 2의 인생을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구요. 선배는 원래 엉뚱한 성격이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왠지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어디가 되었든지 언제가 되었든지 새로운 삶에서는 부침없는 날들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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