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보여주는 죽음이라는 것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모든 영화를 골고루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놀래기만 하는 공포영화나 별 의미 없이 잔인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들이 난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블룸 하우스’라는 제작사가 등장합니다. ‘블룸 하우스’는 ‘제임스 완’ 감독을 필두로 [컨저링]과 [인시디어스] 시리즈, [위플래시]를 성공시키며 자신들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겟 아웃]을 통해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번에 첫 액션 영화를 내놓았다. 바로, [업그레이드]다.
이 글은 영화 [이글아이]와 [채피]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 글은 영화 [업그레이드]의 결말과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소재는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채피]라는 영화에서 비슷한 설정이 있고, [이글아이]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소재는 흔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새로운 소재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전개나 소재가 신선한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애플’이라는 기업을 이야기할 때,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말한다. 애플에서 만드는 제품들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은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개념도 이미 나왔던 개념이고, 태블릿 PC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플’은 그것을 사용하기 쉽게, 그리고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도록 기기를 만들었다. 영화도 비슷하다. 새로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이라고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느끼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업그레이드]가 보여주는 인간과 기계의 조합은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AI 로봇이나, 고도화된 기계를 이용하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몸속에 기계를 내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로, 기계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도 일부 사람들에 한하여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런 일을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뇌의 전기 신호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상용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율주행차량도 있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아주 먼 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욱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소설에서만 등장한 이야기지만, 로봇의 3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이 ‘스템’은 로봇이라고 봐야 할까?? 이 칩은 로봇은 아니다. 몸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 인식되어서, 사람의 몸을 컨트롤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기생수]처럼, 사람 몸에 기생하여서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 [채피]라는 영화를 보면 반대의 상황이 나온다. 생각과 기억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게 되면서, 그를 통해 생각과 기억을 전기적 신호로 표현가능 해진다. 이것을 통해, 로봇 채피는 자신을 만들어 준 사람이 죽어가자, 그 사람의 뇌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여 새로운 로봇에 심는다. 그리고 그 로봇은 기존이 가지고,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생각을 똑같이 한다. 신체만 바뀐 것이지, 사람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재밌는 점은 이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채피]에서 인간의 뇌를 전기적 데이터로 만든 것을 보여줬다면, [업그레이드]에서는 사람의 신체를 AI가 조종하는 것을 보여줬다. 이 점이 참 신선했다. 사람은 죽었다. 그런데, 신체는 AI가 지배하고 있다. 즉, 인간의 뇌를 AI가 컨트롤 하는 것이다. 그럼, 이 사람은 죽은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생각이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의외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줬다. 뇌가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하지 않는 것과 심장이 뛰지 않은 것. 무엇을 죽음이라고 봐야할 것인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된, 영혼이라는 존재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글 아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업그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각하는 AI가 디지털화되어 있는 모든 것을 컨트롤하여, 주인공을 움직이게 한다. 특히, 이 ‘이글 아이’라는 슈퍼컴퓨터는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신호등, 엘리베이터, 휴대전화 등 디지털로 되어 있는 모든 것을 통제해서, 주인공을 돕는다. 하지만, AI는 주인공에서 진짜 목적을 숨기고 다른 목적으로 인간에게 당위성을 부여한다.
한동안 사람들은 컴퓨터를 믿지 못하였다. 사람이 가장 믿을만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컴퓨터나 기계가 돈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믿는 시대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운전을 하고, 핸드폰의 연락처를 통해 지인에게 연락을 한다. 과거, 지도를 보며 길을 외우고,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외워서 다니던 모습과를 다른 모습이다.
영화 속 배경은 모든 것을 컴퓨터가 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은 물론, 치안에서도 드론이 활동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런 기기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역으로 이것이 AI의 단점으로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스템’이 ‘그레이’의 몸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자신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나 드론은 그 용도가 정해져 있다. 이것들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때문에 ‘스템’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인간형 로봇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언케니 밸리’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과 똑같지 않고, 아주 비슷한 로봇을 보면 거부감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언케니 밸리’ 때문에 인간형 로봇보다는 용도에 맞는 로봇 다운 로봇이 실생활에서는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적어도, 인간이 로봇인지 사람인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레이’는 처음에는 인간다운 모습을 보였다. 점점 ‘스템’에서 지배되면서 그 인간다움을 잃었다. 입이 찢어진 채 죽은 사람을 보며, 구토를 하던 그레이는 사람의 목이 날아가도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러다, 마지막은 인간다운 선택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받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스템’이 의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템’은 모든 상황을 예상해왔다. ‘피스크’와의 싸움에서도 ‘그레이’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고, 마지막까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했다. 혹은 아주 빠른 시간 동안 계산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AI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그것을 해제하는 것도 사람이다. ‘에론’은 그런 ‘스템’을 견제했지만 ‘스템’은 ‘그레이’에게 입력 가드를 해제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고, 그런 ‘그레이’는 ‘스템’의 꼬드김에 넘어간 것이다. 인간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알고리즘까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스템’에 의해 계획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존에 보기 힘든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AI 액션이라는 새로운 보여줬고, 그 액션에 맞춘 카메라 워크와 사운드는 주인공이 AI에 점령당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이 영화는 마지막 주인공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디지털 시대, AI와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단순히,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AI처럼 계산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직관과 생각의 필요성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AI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감정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레이’와 ‘피스크’가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레이’ 역시 궁지에 몰렸을 때, ‘피스크’의 감정을 이용한다. 이 감정이라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을까?
그것은 감정을 가지지 못한 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면 인간일 것이다.
P.S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제작사와 배급사 그리고 제작진 크레딧이 음성으로 안내된다. 그리고 영화 제목을 말해준다. 이 부분은 아주 신선해서 언급하고 싶었다. 읽는 것도 귀찮아서, AI에서 읽어달라고 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아마, 제작진도 자막 넣는 것이 귀찮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