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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Jan 18. 2019

사랑도 버거운 청춘의 이야기

영화 [메이트] 리뷰


  

“이혼할 걸 알고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결과가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누구도 시작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가 안 좋을 가능성이 있는 일을 사람들은 왜 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그 결과를 좋은 쪽으로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젊은 세대의 현실 연애를 그려낸 독립 영화 한 편이 개봉을 했습니다. 영화 [메이트]입니다. 



로맨스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사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영화와 연애를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마음이 아프게 만드는 그런 영화가 존재합니다. 영화 [메이트]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현실의 연애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다른 세대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나이대와 비슷한 환경을 지내고 있는 저에게는 무척이나 공감 가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인 준호는 마치 저의 이야기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하는 대사나 행동들이 전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학생 때 많은 연애를 해보라고 합니다. 학창시절, 제가 그 말을 들을 때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이해가 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꼰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런 그들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책임질 일이 많아집니다.. 특히나 자신의 미래를 위한 책임이 가장 클 것입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취업활동이나 자신의 장래를 위한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 활동들이 지속되면서 책임이 늘어나면서 그 책임에 대한 무게를 실감합니다. 아직 스스로에 앞가림도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짐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무게도 견디기 힘든 그들에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봤을 때, 준호는 그런 책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책임에서 버려진 사람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때문에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준호가 책임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처들이 많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더욱 벽을 치는 겁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위에 제가 했던 말과 상충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처가 무서워서 새로운 사람을 못 받아들이는 것이 과도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것보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준호는 그런 인물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벽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나와 함께 장을 담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겁니다. 우리가 어딘가 아플 때, 다른 곳에 신경을 쏟으면 잠시나마 그 아픔이 잊히기도 합니다. 격투기 선수들도 경기를 할 때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다가 경기가 끝나면 아픔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그 경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혹은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잊기 위함이죠.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그것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에게 그것이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누군가 자신이 좋다는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가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좋다는 사람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높고, 자신이 누구에게서나 사랑받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은지는 그런 인물입니다. 


이 둘은 가까워질 듯하지만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둘은 서로 다른 형태로 서로에게 접근하지만, 다른 형태의 벽도 가지고 있습니다. 은지는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실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호에게 자꾸 물어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되는지를 말이죠. 준호가 붙잡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사실 은지는 그것보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정말 그대로 될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누군가가 확실하게 말해줬으면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준호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준호는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준호는 확신을 주지 못합니다. 책임이라는 무게를 알기 때문에 쉽게 그 책임을 다 하겠다는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두렵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싫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준호는 상처를 주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 어린 시절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사람 때문에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때문에, 그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은지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둘은 자유연애라는 것을 시작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마음대로 살지만 서로 필요할 때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관계죠. 물론, 이상이라는 것은 현실과 가깝지 않습니다. 사람 마음이 어떤 이론으로 풀이가 된다면 이런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던 것은 이런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준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은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쉽게 간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자유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준호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둘이 연애를 하는 사이였다면, 준호는 당당하게 만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전에 은지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지함이 아닌 장난에 가까울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어떤 책임이 뒤따른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리기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나쁜 사람도 존재합니다. 생각해보면, 영화 속 준호는 참으로 착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누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점점 은지에게 가까워집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들은 덤덤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요즘 연애의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앞가림도 하지 못한 이들이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엄중함을 느끼고 마음 편하게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죠. 그리고 누군가는 돈은 못 써도, 마음은 펑펑 쓰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특정해서 말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금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암울한 것 같은 그들도 조금씩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이뤄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을 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느리더라도 그들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고, 마냥 지속될 것 같은 어두운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두 인물의 다양한 상황 속에 대변해서 풀어냅니다. 취업하지 못하고, 계속 알바만 하는 준호의 상황이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은지의 상황은 마치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가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조금씩 이뤄나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시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좋은 날이 금방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기 싫어 사랑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준호는 어느새 그 사랑을 대면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어머니와의 식사에서 어머니가 반찬을 올려주던 것을 거부하던 준호가 어머니가 올려준 반찬을 맛있게 먹는 것은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마지막 은지의 마지막 대사는 영화 속 준호가 했던 대사처럼 누군가 한 사람이 마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준호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4 / 5  사랑도 버거운 청춘의 이야기



에필로그

본문에는 다루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심희섭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이 영화에서 그는 준호 그 자체를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글의 흐름상 넣을 만한 자리가 없어서 이렇게 따로 언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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